이제 한반도의 봄이 찾아오는 것일까?

글: 메르시 리아나스-앙헬레스 [1] (해외통신원, ISC)
번역: 심태은 (The 숲 한글판 편집장, ISC)

2016년 촛불 혁명 이후 생긴 한반도에서의 변화가 봄을 불러오는 듯 하다. 70년 간 분단되었던 한반도가 마침내 통일을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은 가운데, 나는 한국 국민들과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전 세계 시민들이 제주  4.3 민중항쟁과 항쟁의 의의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단은 38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
올해는 제주 4.3 민중항쟁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이라는 7년 7개월 사이에 제주도민들은 미국 정부와 이승만 정권이 초래한 한반도 분단에 반대해 저항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해야 했다.

50년 간 낙인이 찍힌 채 살았던 4.3 관련자들(사망자, 생존자, 그 가족 등)은 이 심각한 부당함에 일언반구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78년에 발표된 소설 ‘순이삼촌(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작품에서 설명한다)과 “죽은 자들이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하게 하는 [3]”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4.3 사건을 금기시했던 문화를 깼다. 4.3 특별법(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마침내 2000년 1월 12일에 제정되었고, 전국적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발간된 보고서에서는 양민학살이 있었던 이 기간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정확한 사망자 및 실종자 수를 집계하는 것은 어렵지만, 보고서는 그 숫자가 제주도 인구의 10%, 즉 25,000명에서 30,000명 [4]에 이를 것으로 보았다.

봄이 정말 가까워진 것일까?
2018년 5월 1일, 나는 서울 시청광장에서 4만여 명이 모인 노동절 집회에 참가했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자의 단결을 외쳤다. 한국어로 된 구호와 발언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집회 참가자들이 한국어로 된 인터내셔널가를 불렀을 때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향한 이들의 열정으로 감동적인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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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8년 5월 1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참가자들. 구청사 건물에 걸린 현수막에는 ‘버들강아지 반가워 꼬리 흔든다 봄이 왔나 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 필리핀 평화여성파트너 참가자들은 국제전략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노동절 집회 후 행진에도 참여했다.)

집회가 끝난 후, 노동자들은 시청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나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에서 수 백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했던 바로 그 거리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벌어졌던 집회에서 수 백만의 시민들이 한국의 거리 곳곳을 밝힌 촛불은 한반도에 변화를 몰고 왔고, 평화와 정의를 위하여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민중에게 있음을 증명했다.

4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4년형과 수십억에 달하는 벌금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명박 전 대통령(2008년 ~ 2013년 재임) 또한 뇌물, 권력남용, 횡령, 세금회피 등으로 기소되었다.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이 전대통령 또한 수감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4월 2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과 만나 현재의 정전상태에서 벗어나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의 평화를 건설하자는 데에 동의했다. 제주 4.3 항쟁이 있은 지 70년만에 남과 북이 통일과 평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정의당 및 용산시민연대 소속 정연욱 활동가를 만나 판문점 정상회담의 생중계 장면이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5]. 북한 주민으로는 최초로 38선 [6]을 넘은 것이었다. 촛불 혁명이 문 대통령으로 하여금 평화 의제를 추진하도록 만든 것이다. 또한 정연욱 활동가는 북한의 미국과의 핵대결이 트럼프 미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이끈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저 (미국의) 선의에 기대 협상을 진행할 수는 없고, 오히려 (북한이) 힘을 가지고 있어야 협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서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도 평화와 통일이 마침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제주에는 언제 봄이 올까?
제주 다크 투어 [7]를 통해 나는 4.3 기념관과 무남촌(無男村)이라고도 불린 북촌리를 포함해 양민학살이 이루어졌던 마을들을 둘러보며 제주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폐허가 된 마을에 서서, 나는 되풀이되는 인류의 잔학성에 대해 생각했다. 1948년 1월의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마을이 전소되었고 여성과 아기를 포함해300여명이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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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북촌리 양민학살을 그린 강요배의 그림에서 엄마는 총에 맞아 사망했지만, 아이는 엄마의 젖을 빨고 있다. 이는 제주 4.3 항쟁 당시 제주도민에게 자행되었던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행위를 묘사한다.)

제주 4.3 사건 조사보고서는 학살이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규정했고, 2003년 10월 23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이 사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은 처벌 받거나 신원이 밝혀지지도 않았다. 한국의 전쟁과 분단에 저항하다가 살해당한 제주도민들에 대한 인정조차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그저 “희생자”로 불리며 국가 권력에 대항한 범죄자로 여겨졌다 [9].

이러한 과거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제주도민들에게는 새로운 상처가 생겨버렸다.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2년 3월 7일, 해군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었던 것이다. 2016년 기지가 개장한 이래로 이지스 구축함을 포함한 미국 군힘과 핵잠수함을 포함한 10대의 외국 군함 [10]이 제주 해군기지에 정박했다. 2017년 11월 22일에는 미국 핵잠수함 미시시피호가 정박 [11], 이 해군기지가 미국의 동북아 군사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된 것임이 입증되었다. 현재 제안된 제주 신공항(공군기지)는 한국과 아시아에 미국의 군국주의를 더욱 확산할 것이다.

내가 2016년에 제주도에 와서 생명과 평화 대행진에 참여했을 때, 기지 건설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이번 방문에서도 나는 강정과 주변 강둑을 거닐었다. 그러면서 바라본 군 시설은 지역 생태계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콘크리트 괴물 같았다. 마을 주민들은 당국이 현재 눈감아주고 있는 외국 군함에 의한 환경 오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현재 기지가 운영 중이기 때문에 투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주민도 있지만, 여전히 강정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강정 마을 주민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기지가 세워졌어도 우리는 평화의 씨앗을 심는다 [12]”고 그들은 말했다. 구럼비 바위 폭파 6주년에 이들은 해군기지 근처의 밭에 콩을 심어 자신들의 평화를 위한 행동이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주민들은 해군기지를 향해 백팔배를 하며 새벽을 맞이했다. 주민들은 매일 기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인간띠 잇기를 진행한다. 우리 평화여성파트너 연대 참가자들도 인간띠 잇기 행사에 참여하여 주민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투쟁 속에 이러한 흥과 힘이 있다면, 승리도 반드시 뒤따르리라. 이제는 시간과 노력의 문제일 뿐.

모든 사진은 4월 30일~5월 11일까지 이루어졌던 평화여성파트너의 교육/연대 방문 기간 동안 메르시 앙헬레스가 촬영한 것임.

Notes:

  1. 나는 평화여성파트너(Peace Women Partners)의 다른 두 동지와 함께 한국으로 연수 및 연대 여행을 왔다. 우리는 서울과 제주를 방문했는데,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국제전략센터와 함께 일정을 수행했다.
  2. 고 노순택 작가의 말을 인용. [2018 제주 4.3. 70주년 25회 4.3. 미술제: 기억을 벼리다] 카탈로그 p. 79 (제주도청)
  3. 안혜경, 개회사, [2018 제주 4.3. 70주년 25회 4.3. 미술제: 기억을 벼리다] 카탈로그 p. 17 (제주도청)
  4. 피해 보고서, 제주 4.3 사건 조사 보고서 p. 455, 제주 4.3 평화재단, 2003년 12월
  5. 우리는 한반도와 필리핀 정세를 토론하기 위해 5월 2일에 만났다.
  6. 38선은 한반도를 반으로 가르는 것으로,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 한국에서 신탁 통치를 할 때 임시로 설정된 것이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Korean_Demilitarized_Zone)
  7. http://www.facebook.com/jejudarktours
  8. 북촌리, 조천면 사례, 제주 4.3 사건 조사 보고서 p. 503, 제주 4.3 평화재단, 2003년 12월
  9. “제주 4.3이란?” p. 36, 제주 4.3 기념사업위원회, 2018년 3월
  10. 외국 군함 10정 중 6정은 미국, 2정은 캐나다, 2정은 호주 군함이다.
  11. “제주 비핵화 심포지움”, 강정마을 이야기, 2018 2월-3월, p. 1, 제주 강정마을
  12. “구럼비 바위 폭파 6주년”, 강정마을 이야기, 2018 2월-3월, p. 1, 제주 강정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