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세계가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 사파타주의와 차베스주의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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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3일 게릴라 지도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빠브리시오 오헤다(Fabricio Ojeda)를 기리기 위한 첫 번째 공식 행사에서 수천 명의 베네수엘라 인들이 행진하고 있다.(빠올라 마르뚜치 고메스)

작성: 자넷 찰스(해외통신원, 미국) 번역: 홍정희(번역팀, ISC)

멕시코 사빠띠스따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이 전략적으로 민중의 힘을 조직화한 것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도입

아메리카 대륙 전역의 흑인과 원주민의 해방투쟁은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점을 준다. 아이티, 쿠바, 그레나다, 볼리비아 등 여러 민중권력 개념 가운데 무엇보다 사빠띠스따[ref]오늘날의 사빠띠스따는 멕시코 혁명가로 사뽀땍족 지도자인 에밀리아노 사빠따(Emiliano Zapata)의 이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사빠띠스따)는 원주민과 모든 멕시코 사람들에게 토지분배, 자유, 자결을 외쳤던 사파타 사상의 부활이라 하겠다. 사빠따는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 체제에 대항하여 모렐로스주(州)에 뿌리를 둔 남부해방군을 창설했고 공적으로 보유한 땅은 당연히 옹호하였다.[/ref]와 차비스따[ref] 차비스따라는 용어는 베네수엘라의 유럽계 후손 지배층이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볼리바르 혁명을 지지하는 대다수의 가난한 아프리카계 자손들과 원주민들인 비유럽계 지지자들을 업신여기는 것에서 유래했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사회보장과 정의, 공평의 세 원칙과 자신들의 지도자가 가졌던 원칙에 입각하여 혁명 과정에 전념한다는 차비스타라는 용어를 애정을 담은 말로 변화시켰다. 차베스가 아프리카와 원주민 조상을 받아들이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인 최초의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ref]가 위대한 역사적 궤도와 함께 하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혁명 운동을 구현하고 있다.

서로 다른 맥락이지만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VBR)과 사빠띠즘(Zapatismo)은 민중권력 “desde abajo y la izquierda)[ref]이것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에서 유명한 정치 속담인 "아래에서부터 왼쪽으로"를 의미한다. 현대 혁명과정에서 풀뿌리 운동과 민중권력을 표현하는데 쓰인다. [/ref]”을 구축하고자 하는 세계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볼리바리안 혁명과 사빠띠즘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은 이 두 혁명운동을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국가 안에서 진행 중인 사회운동과 변혁적 실천이라는 큰 그림의 가진 지역 내에서의 대화로 인식하기보다는 각기 개별 운동으로 치부해 버린다[ref]이 과정은 더 큰 지역적 차원에서 짜여진다. 어떤 운동도 고립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의 운동, 민중, 과정은 독립을 주권을 공고화하고 미국 및 다른 외국 점령자들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LAC)들도 이 투쟁에 함께 나섰다. 지난 10년 동안 LAC는 국가 간 (예 : 중남미 및 카리브 국가 공동체), 풀뿌리 운동 (예 : ALBA 운동) 간의 연대 모임을 위한 지역 및 국제 인종 차별 폐지론자들의 정상회담의 무대가 되었다. 그들은 이 공간에서 그들의 전략과 전망을 토론했다. [/ref]. 서로를 배타적으로 인식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올바르고", "확실하고", "좌파", "풀뿌리"라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두 과정을 서로 보완하면서 해방, 자결, 자치, 주권 등의 공통 목표 달성을 위해 공동의 투쟁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고무적이며 통찰력 있으며 건설적인 입장이다.

차비스모와 사빠띠스모를 함께 논의하는 것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정치적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ref]“담화”에서 이 두 운동은 조직 목적을 위한 역사와 전략을 비교 분석하도록 장려한다.[/ref]. 이러한 논의는 선거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향식 접근이며, 민중이 변혁을 위한 진보적 운동의 핵심이어야 한다는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사빠띠스따와 차비스따 : 까라꼬레스(Caracoles)와 꼬뮤나스(Comunas)

치아빠스주(州)에서는 사빠띠스따가 민중의 힘을 까라꼴레스(달팽이) 형태로 조직하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차비스따가 Estado comunal (공동체 국가)로 통합해 나가고 있다. 이들의 조직 과정은 시간, 장소, 조건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기반으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현하는 기본적인 조직 원리를 따른다. 두 운동 모두 완결적이거나 고정적이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며 조상들이 초기 식민지 반대투쟁에서 성취하려 했던 것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뤄나가고 있다.

치아빠스주(州)에서 사빠띠스따는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고립되어 있지 않고 멕시코 사회 및 국제 사회와도 잘 연결되어 있는 자치권을 건설하고 있다. 1994년 1월 1일, 사빠띠스따는 나쁜 정부 el mal gobierno (예: 멕시코 정부)와 신자유주의가 오랜 세월 수천 명의 원착민을 무기로 동원한 식민주의에 맞서 12일간의 전쟁을 시작했다[ref]사빠띠스따는 멕시코 남부 전역의 원주민과 깜뻬시노(소작농) 공동체에서 10년간 비밀리에 게릴라 훈련과 정치의식을 고양한 후 전쟁을 시작했다. [/ref]. 그 이후 그들은 ‘토지와 자유(Tierray Libertad)[ref]20 세기 초 멕시코 혁명의 정치적 요구인 "토지와 자유"를 의미한다.[/ref]’를 확보하는 무수한 방법을 개발해 왔다.

역사적으로 사빠띠스따는 선거 전략이 아닌 자치를 통한 민증권력 구축에 집중했다[ref]사빠띠스따는 2013년 라 에스꾸엘리따 (LA escuelita/작은 학교)를 주최하여 자율 조직 모델을 세계와 공유했다. 첫 모임에 2,000명 이상이 참여하여 까라꼴라스 설립 10주년을 기념하였다. 사빠띠스따는 멕시코 민중과 국제 학생을 지역 사회에 파견하여 남성, 여성, 청소년 및 어린이와 함께 살고 일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은 사빠띠스따 옥수수 밭(Zapatista milpas)에서 일하며, 주된 실례를 담은 사빠띠스따가 제작한 교과서를 읽고 자율학교에서 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ref]. 그들은 좋은 정부위원회와 까라꼴레스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지역 사령탑)을 설립하고 무장으로 자위권을 지킨다. 사빠띠스따는 옥수수, 커피, 콩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해서 자체 경찰력과 영토를 확보하고 식량주권을 확립하였다. 결과적으로 사빠띠스따는 자본주의적 방식이 아닌 원주민 간의 상호 의존성에 기반 한 그들만의 경제 구조를 발전시켰다. 모든 지역 사회 구성원들은 다언어문화 교육과 서구적 방식은 물론 대대로 내려온 전통 방식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여성들은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청년과 아이들도 대표자를 선출하여 대표자로 좋은정부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다.

최근 2017년 1월 1일 사빠띠스따민족해방군(사빠띠스따)는 2018년 멕시코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선거운동을 조직하려는 원주민총회(CNI)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 발표로 치아빠스 지역과 멕시코 전국 운동 건설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과 원주민총회는 민중 주도의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대담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2017년 5월에는 대변인으로 활동할 한 원주민 여성의 신분이 발표될 것이며 모든 것은 “민중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도 중요한 목표지만 사빠띠스따와 여러 멕시코 조직위원회가 좀 더 필수적인 조직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은 선거운동이다. 선거운동은 그들 운동의 주요 의사 결정기구로서 원주민, 아프리카 자손 및 부족 주도의 의회를 구축하는데 용이한 환경을 조성한다. 도시 거주자, 농부, 노동자, 이민자 등 국내외 수백만 멕시코인이 이 과정에 참여한다.

선거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사빠띠스따의 결정은 분명하고 구체적인 전략이 아니었던 반면, 볼리바리안 혁명은 민중의 광범위한 참여 공간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일찍이 국가 권력을 쟁취했다. 이 두 운동은 서로 다른 시작점에도 불구하고 대안적 의사결정 과정을 촉진하는 혁신적인 통치방식을 통해 민중의 힘과 자결을 중심으로 한 전략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어떤 이들은 대선에 참여하겠다는 사빠띠스따의 결정이 그간의 자치를 향한 헌신을 저버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ref]일부 비 사빠띠스따 동지들은 사빠띠스따의 국가 정치에 참여는 민중을 억압하는 구조에 종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의 자율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수십 년 동안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풀뿌리 조직화와 민주화를 아주 무시한 견해다. 국가 정치에 참여하면서 민중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은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혁명적 과정을 교차시키는 실천 방법이다 [/ref]. 그러나 사빠띠스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빠띠스모는 반드시 국가 중심주의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 좌파 진영의 승인이나 남미 좌파를 모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두 운동은 풀뿌리 민중을 토대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들의 국가 권력은 미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여 반드시 무너뜨리게 하는데 복무해야 한다. 구체적 전술은 진지한 전략적 논의를 통해서 도출되어야 하며 이러한 논의를 하기 위한 규율도 필요하다.

두 운동 모두 기반 구축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회원을 영입하여 자신들의 혁명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두 운동은 정치적 획득을 기념하고,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논의하고, 도전을 계획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토지와 의료, 주택,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고 존엄성을 가진 삶을 영위할 수 권리를 보호한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1998년 제5공화국 운동(Movimiento Quinta República)의 독립적인 토대 구축과 이후 전 군사령관이자 정치사범인 우고 차베스 라파엘 프리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 할 만큼 성공적인 대선운동을 통해서 국가 권력을 쟁취했다[ref]그러나 사빠띠스따처럼, VBR도 오랜 투쟁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볼리바리아인, 차비스따, 베네수엘라 혁명가들은 이 혁명과정이 독립 이전과 과이카이뿌로 족장과 아프리카인 호세 레오나르도 치리노스(José Leonardo Chirinos)와 후아나 라미레즈(Juana Ramírez)가 이끈 투쟁에서부터 20세기 게릴라 운동과 1989년 까라까소(Caracazo) 같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민중봉기와 맥을 같이 한다. [/ref]. 그 이후로 베네수엘라와 남미와 카리브해 국가(LAC)는 의심의 여지없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초월하여 대다수 흑인과 빈곤층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 간의 소통을 활발히 진행했다.

역사적으로 집권층을 제외한 베네수엘라 모든 사람들이 엄두를 내지 못했던 석유 수입의 재분배로 기본 인권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ref] 베네수엘라 과두 정치는 미국 정부와 함께 우익이 국내 억압 정치와 반혁명적 활동을 자행했다. 가장 최근에 그들은 무차별 폭력, 쿠데타 시도, 경제 전쟁을 통해 볼리바르 혁명에 대항하여 불안정화 시도를 꾀하고 있다.[/ref]. 공식적으로 인정된 고용 여부와 상관없는 노령 연금을 비롯해 의료,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의 교육, 주택과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제공과 같은 정책들이 일반 시민과 이민자, 차비스따와 반대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양도 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베네수엘라는 공동체 국가를 굳건히 건설하기 위해 매일 꾸준히 노력해 나가고 있다. 꼬뮌은 선출직 대표자 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민중에게 권력을 집중 시키고자 한다[ref]꼬뮌은 지역 사회가 선출한 주민자치위원회의 지역적 모임이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설립되기 전에는 지역 사회 구성원이 얼마나 많은 세대와 가구가 지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직접 인구 조사를 실시하였다. 지역 사회가 선거를 수년마다 조직하여 실시한다. 전국에 등록된 것과 등록되지 않은 수천 개의 꼬뮌이 있다.[/ref]. 꼬뮌은 민중회의를 개최하여 농업 활동, 언론 및 경제 개발에 이르기까지 지역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프로젝트를 결정하고 실행한다[ref]농업은 옥수수, 카사바, 질경이를 재배하고 가공하며 가축을 기르며 많은 시도를 꾀하고 있다. 미디어 프로젝트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 및 TV 채널까지 다양하다. 특히 베네수엘라에 대한 최근의 경제 전쟁에 비추어 볼 때 경제에서는 공동체 통화(trueke) 또는 물물 교환 방식을 도입했다. [/ref]. 꼬뮌은 성별, 성정체성, 청소년, 노인, 물, 전기, 음식 및 기타 주요 문제에 초점을 맞춘 실무 그룹을 조직한다. 이 방식은 세대 간 참여, 의견 개진, 투표를 독려한다[ref]노동자 협동조합, 정치 집단, 꼬뮌과 더불어 주민자치위원회가 1999년부터 영향력을 키우며 실천해오고 있다. [/ref]. 주목할만한 것은 아프리카계 베네수엘라 사람들 또한 꼬뮌과 유사하지만 유럽 식민지 제국에 대항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싸웠던 해방된 아프리카인(마룬)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꿈베스를 조직했다.

어느 과정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두 운동 모두 목적의식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조직을 해나가는 훌륭한 사례이다. 또한 두 운동은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세계에 적합한 세상"

우리 지구를 지배하는 정치ㆍ경제 체계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는 것이 만천하에 명백하게 드러나면서 사빠띠스따 해방투쟁과 볼리바리안혁명과 같은 혁명적 과정이 미제국주의를 매장하는데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갈레아노(Galeano) 부사령관은 사빠띠스따 봉기 23주년 기념일에 열린 국제 행사에서 “우리는 저명한 인사들인 여러분에게 세상을 바꾸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상의 도래, 더 나은 세계, 좀 더 정의롭고 인간적이며 자유로운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새로운 세상을 위해 우리, 사빠띠스따와 함께 훈련될 수 있습니다. 신세계가 도래했을 때 똑같지는 않겠지만 이 훈련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차베스도 2012년 대통령 선거 연설에서 다극화 세계를 확립하고 인간성을 지키며 어머니 지구를 보존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신세계”를 분명히 밝혔다. (이 내용은 현재 베네수엘라 법률로 승인된 국가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뛰어 넘어야 하고 계속 직면하게 될 모든 장애물을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지만 인류 전체가 함께 "나선다는 것"은 정말로 흥미롭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시간, 장소, 조건이 전 세계적으로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이제부터 다음 단계와 중요한 대안을 구상해야한다.

연대는 우리 생존에 필수적이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며. 이를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이다. 그러한 연대의 힘으로 대선에서의 사빠띠스모 시도가 반드시 그 목표를 성공할 수 있도록 하고, 볼리바르 혁명도 지켜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많은 세계에 적합한 세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빠띠스따가 추구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