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발제] 남미의 진보정치 주기는 끝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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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최근 남미에서는 이른바 분홍빛 조류의 퇴조와 정치적 우익의 복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998년 우고 차베스의 대통령 당선을 시작으로 시작된 정치적 좌파의 득세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에서 중도 좌파 정권이 들어서고 대중운동과 결합된 지도자들인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와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이 되면서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조류를 거스르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적인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는 매우 탄력적인 경제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3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을 계기로 남미의 진보주의는 위기국면으로 진입하였다.

당장 2003년 4월 실시된 베네수엘라의 보궐선거에서 차베스가 직접 고른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는 우익 야당 연합체인 “민주주의를 위한 원탁회의(URD)”가 내세운 카프릴레스 후보에 1.5% 내외의 표차로 신승하여 볼리바리언 혁명의 헤게모니가 침식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베네수엘라 야당 세력은 그 후 폭력시위와 경제 전쟁을 통해 끊임없이 마두로 정권의 불안정화와 구체제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2014년 브라질에서의 대선에서도 재선에 도전한 디우마 호우세프 대통령은 우익후보에게 신승하였으며 그 이후 연정 파트너였던 우익세력의 공격을 받아 탄핵 위기에 몰려있다.

라틴 아메리카 집권 좌파세력의 위기는 2015년 11월에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후계자인 시올리 후보가 우파인 마크리에게 패배하여 12년에 걸친 좌파집권이 끝나고 마크리 정권이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시기에 행해졌던 사회정책들을 철회하고 노동운동세력을 탄압하며 라틴아메리카 통합과정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참여를 철회하면서 고조되고 있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도 우익의 쿠데타 기도를 겪었으며 그 전의 진보적 정책에서 후퇴하여 자원개발에 초국적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도 집권연장을 위해 개헌을 시도했으나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였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명백히 라틴 아메리카 좌파 집권의 퇴조를 보여준다. 좌파세력은 우익에게 행정부 권력을 빼앗기거나 총선에 실패하여 의회권력을 빼앗기고 있으며 집권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우익과의 타협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선택적 적응 정책을 통해 초기의 진보 플랜에서 한참 후퇴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우선 라틴 아메리카 좌파 집권세력의 위기의 원인에 대한 해명과 이 위기가 과연 진보주기의 종말과 신자유주의와 친제국주의적인 우익의 전반적인 복귀로 이어질 것인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있다. 이러한 검토에 앞서 주의할 점은 이른바 분홍빛 조류는 단일한 흐름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그 전 라틴아메리카 민중에게 강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결과 광범위한 대중투쟁이 발생했으며 이 대중투쟁이 진보세력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점은 좌파가 집권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에서 대중투쟁의 성과는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제정을 통해 이루어져 시민사회의 재구조화,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자원 민족주의와 천연자원 렌트의 민중적 분배 등에서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진데 반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은 기존의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이 없이 신자유주의로부터 야기된 체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기존의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 국가역할의 증대와 복지기금의 확충을 통한 빈곤경감과 수요확충등 이른바 헤테로독스 경제정책을 도입하였다. 우루과이와 같이 인구규모가 작고 전통적으로 대토지소유나 금융귀족의 세력이 약한 나라에서는 이런 헤테로독스 경제정책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바스케스-무히카로 이어지는 좌파 연정의 집권연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우는 결국 세계시장 내에서 그 나라들의 경제가 편입된 방식을 전혀 바꾸지 못했으며 기존의 소득분배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그 결과 세계 경제의 조건의 변화는 곧바로 이들 좌파 정권의 정치적 위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1. 이른바 “진보주기” 시기의 평가

남아메리카에서의 진보주기는 미국이 남아메리카 각국에 강요했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모순의 폭발이 원인이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언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진보주기의 시기 동안 남아메리카의 계급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형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미국의 지시대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시행한 각 나라들에서는 단순히 소득격차만 확대된 것이 아니라 국가부채의 증대와 공공부문의 축소, 인플레이션의 심화, 제조업 경쟁력의 상실, 초국적 자본에 의한 자원의 약탈 등으로 빈곤화된 민중과 지식인, 현지 토착기업을 운영하는 민족자본가 등에 의한 저항운동이 고조되었다.

1992년 발생한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소(카라카스 봉기)는 이 저항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봉기과정에서 희생되었다. 2001년 아르헨티나에서 메넴정권의 가혹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실업, 빈곤화에 저항하는 노동자, 시민의 봉기가 일어났고 볼리비아에서는 코차밤바 투쟁과 코카농민들의 봉기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에콰도르에서도 반복되었다. 브라질에서는 부패한 콜로르 정권이 붕괴되고 사회민주당의 카르도주 정권이 들어섰다. 카르도주는 당시 브라질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플레이션 억제를 경제정책의 제1과제로 내걸었는데, 이를 위해 공공부문 지출의 축소와 긴축재정 등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억제되었으나 브라질의 제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상황에서 룰라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과거의 전투적인 대결 정책을 버리고 일정하게 현실과 타협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하였다. 룰라 정권은 소득재분배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보다 페트로브라스 등 국유기업에 대한 정부통제를 강화하고 볼사 파밀리아 등 저소득층에 대한 조건부 부조 정책을 시행하는데 그쳤다.

이런 사정은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이다. 국채 채무불이행 상황에서 집권한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미국의 권고로 시행해왔던 달러와 자국화폐인 페소 간의 1대1 교환정책을 폐지하고 페소의 평가절하를 유도함으로써 산업의 대외경쟁력을 회복하려 하였다. 그리고 국제채권단과 채무조정 협상을 통해 채무액의 70% 이상 감면받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모두 강력한 농업부르주아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어떠한 구조개혁도 시행할 수 없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는 국영석유회사의 통제를 강화하고 국영석유회사의 수익을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규모로 사용함으로써 이른바 과두세력과의 첨예한 정치투쟁을 벌였다. 또 2002년 쿠데타 실패 후에는 쿠데타 과정에 참가하였다가 외국으로 도주한 공장들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자주관리 실험을 허용하고 사회적 경제를 구축하는 등 차베스 정권은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과두세력과 첨예한 계급투쟁을 유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에콰도르의 코레아 행정부와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행정부의 경우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수사학을 쓰고 있지만 그 실상을 보면 동아시아의 개발주의 체제를 모델로 설정하였다는 증거들이 많다. 개발주의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적인 교역체제에 저항하면서 교역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제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의 경우 동아시아 국가가 가진 기술발전과 내수시장, 역내 산업화를 가속시킬 수 있는 지역적인 분업체계를 갖추지 못하였다.

그 반면에 그 나라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광물과 함께 커다란 농업적 잉여를 가지고 있어서 국제시장에서 이런 1차 산품의 수출로 외환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특히 21세기에 접어들어 이들 국가는 미국 패권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과의 교역관계를 강화하였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석유, 광물, 농산물 등의 막대한 수요를 발생시켰고 남미 각국은 이런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막대한 외환을 벌어들였다. 피상적으로는 이런 관계가 차베스 전 대통령의 중심적인 국제전략의 하나였던 국제질서의 다극화, 다중심화와 일치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중국과의 교역관계에서 남미의 진보정권들은 하나의 블록으로서 전략적으로 행동하지 못하였다. ALBA나 UNASUR, MERCOSUR, CELAC(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 공동체)등의 기구들은 그 점에서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차베스가 볼리바르주의를 내걸며 그토록 강조했던 남미통합은 좌파정권들 사이의 정치적 연대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경제적 통합은 거의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차베스의 원대한 구상에 포함되어 있던 남미은행과 통화통합은 브라질의 반대로 지지부진하였다.

결국 미국이라는 패권국과의 정치경제적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미의 진보적 정권들은 각개약진 식으로 중국과의 교역을 증대시켜나갔을 뿐이지 사회진보에 필요한 자립적 산업화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별로 행하지 못하였다. ALBA 출범 초기에 그렇게 강조되던 남미전체를 포괄하는 에너지 루프를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과학기술적 발전을 위한 통합적인 기구도 출범시키지 못하였다.

결국 2010년 이후 세계적인 장기불황국면에서 그동안 성장을 지속해왔던 중국경제마저 성장률이 떨어지자 이들 나라의 경제를 지탱해왔던 석유와 1차 산품 수출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런 경기하강국면에서 각국은 산업의 다변화와 남미 경제통합으로 극복하기 보다는 경쟁적으로 자국 상품의 시장을 확대하는데 골몰하였다. 그 결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등에서 기존의 민족주의적인 경제정책에서 탈피하여 초국적 기업과 초국적 금융자본과의 타협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그 보기로는 2015년 아르헨티나 대선을 앞두고 집권당의 후보였던 시올 리가 공공연하게 아르헨티나 경제에 재앙을 가져온 벌처 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국채에 대해 기존의 협상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으로 원리금상환을 약속하는 재협상에 대해 공약한 사실을 들 수 있다. 호우세프의 노동자당 정권 역시 외환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일종의 재정긴축을 시도하는 등 그 전 신자유주의와의 투쟁과정에서 쟁취한 많은 성과들에서 후퇴하는 조짐을 보였다. 호우세프는 재선에 성공하고 난 다음 재무부 장관에 극단적인 우파 경제학자를 임명하는 등 자신의 지지기반을 배반하였다.

에콰도르의 코레아 정부도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고 처음에는 누진세의 강화와 내수의 진작, 국내자본의 보호와 같은 전통적인 발전주의적 노선을 택했으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유가가 하락하자 수출진흥책과 EU와의 자유무역협정에 매달리게 되었다.

  1. 미국의 개입과 우익의 복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남미의 분홍빛 조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남미 각국 사회에 만들어놓은 사회적 모순을 토대로 발생하고 확산하였다. 이 흐름은 미국의 구상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의 결성을 좌절시켰고 라틴 아메리카 각 나라의 개발주의적 전략을 고취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중지되거나 약화되고 자원민족주의가 강화되었다.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생각했던 지역에서 미국은 과거 쿠바나 니카라과, 파나마, 그라나다 등에서 행했던 노골적인 군사개입을 자제하였다. 이와 같은 미국의 태도는 중동과 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 개입으로 인해 군사적 역량을 이 지역에 쏟아 붓기가 어려웠다는 점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정치적 변화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 어느 한 나라에 개입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반제국주의나 민족적인 좌파세력이 집권한 나라에 대해서는 정보기관과 다양한 비정부기구를 활용하여 끊임없이 불안정화 작전을 벌였다.

이른바 탈신자유주의 또는 탈자유주의 체제는 그 지향이 매우 유동적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우는 가장 부드러운 탈자유주의 체제라 할 수 있는데, 브라질은 룰라 대통령 시기에 이미 연금개혁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 경제처방의 일부분을 수용했으며 거대 농업적 기업, 자본가 집단과의 일정한 연합을 통해 집권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도 키르치네르 집권 후 지속되었던 세계시장의 호황국면에서 막대한 농업이윤을 확보하였지만 그 이윤은 제조업부분의 성장을 위한 전략적 자원으로 쓰이지 않고 농업자본가의 수중에 축장되었고 해외로 이전되었다.

아르헨티나소 기간 중 노동자들의 공장, 작업장 점거운동으로 생겨난 수많은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에 대해서도 키르치네르 정권은 매우 부정적 태도를 취했으며 그 기업이 협동조합의 형태로 법적 인정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볼리비아의 경우도 채취산업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초국적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선주민 공동체의 권리의 부당한 침해는 제대로 구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탈 신자유주의 체제 중 베네수엘라에서만 사회주의 지향의 민중운동이 국가권력과 긴밀히 연관되어 사회주의 이행 전략을 이행하려는 의미있는 노력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에서는 심각한 구 과두세력과 차비스타 민중 간에 심각한 계급투쟁이 발생하였다. 유가가 높게 유지되고 있는 동안은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를 환율방어를 위해 쏟아부을 수 있었으나 차베스 집권 말기부터 서서히 외환보유고가 줄어들고 있었고 이에 따라 외환통제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암달러 시세가 폭등하고 그동안 어느 정도 통제되었던 인플레이션의 고삐가 풀렸다.

결국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이후 우익세력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거리폭력과 경제전쟁, 미디어 전쟁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NGO 등의 인권공세 등 다양한 불안정화 전략을 통해 마두로 정권의 불안정화를 유도했으며 2015년 총선에서 우익세력이 압승함으로써 체제변화를 조기에 앞당기기 위해 현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를 조직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도 경제상황의 악화가 이어지면서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EU와 FTA를 체결하는 등 신자유주의 회귀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차기 대선에 나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근의 우익세력의 복귀와 좌파 정권들의 위기는 그들이 추구한 탈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이 매우 모순적일 수밖에 없으며 21세기 첫 10여년 동안의 성공은 1차 산품의 국제가격이 높게 유지되어 국내적으로 계급타협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탈 신자유주의 국가들은 국제시장에서 1차 산품을 팔아 생긴 잉여중 일부를 국내 자본가의 이익을 별로 침해하지 않고 사회적 기금에 돌리든지 임금인상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농산물과 채취산업에서의 호황이 끝남에 따라 이런 계급타협의 조건은 사라졌고 이에대해 탈 신자유주의 정부는 사회주의 지향의 급진적 구조조정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의 재도입에 의해 재정상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하였으며 이는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각종 선거에서의 패배와 우익세력의 불안정화 전략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1. 전망

우익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아르헨티나에서 새로 대통령이 된 마크리는 키르치네르, 페르난데스 양 대통령 집권 중에 이루어졌던 개혁들을 무효화하고 상황을 1990년대로 돌려놓고 있다. 마크리 취임 후 몇 달 동안 10만명이 넘는 공공부문 종사자가 해고되었으며, 수많은 기업과 작업장에서 임금 삭감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공공 서비스와 국영석유회사의 사영화가 계획되어 있다. 이에 따라 민중의 저항도 점차 조직화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5월광장 어머니회 등 인권 단체들의 집회와 일반 시민들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 우익 세력들이 좌파의 약점을 적절히 공격해 정권을 장악하거나 불안정화시키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호전시킨다든지, 새로운 발전전략을 모색할 만큼의 전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브라질도 동일하다. 호우세프 대통령이 탄핵이란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쿠데타로 하야했을 때 다음 대통령이 될 테메르가 브라질 경제를 제대로 관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 임시대통령에 불과한 그는 벌써부터 수많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페트로브라스의 민영화, 재정긴축의 강화, 국제 금융투기세력과의 화해 등등이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꾸러미 속이 들어있다.

호우세프에 실망해 등을 돌린 민중들은 이런 과거로의 회귀정책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결국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은 체제의 급진적 변화없이 계급타협에 입각하여 과거 신자유주의의 가장 끔직한 유산의 일부만을 청산하려 했던 중도좌파의 프로젝트는 그 역사적 소임을 다했으나 우

익적 대안은 없는 매우 유동적인 상태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우익세력의 복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복원되는 과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우익세력 역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국 모두에서 매우 분열되어 있으며 상황을 장악할 만큼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베네수엘라에서 볼리바리언 혁명운동의 경로가 남미의 진보정치에 결정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 오직 베네수엘라에서만 민중이 혁명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그 혁명의 성과를 방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민중이 혁명의 방어에 성공한다면 남미통합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수준에서 추진력을 얻을 것으로 전망한다.

작성: 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