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ing Korea] 경산 코발트 광산 기행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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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9일 국제전략센터가 주최한 경산 코발트 광산으로 기행을 다녀왔다. 이번 기행 장소인 경산의 코발트 광산은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민간인이 학살된 현장이었기 때문에 슬픔이 베어있었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원래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코발트를 착취했던 장소였다.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이 광산은 인민군에 동조했거나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민간인이  처형되어 시신을 유기한 장소였다. 이러한 한국 역사의 암울한 한 장면을 오랫동안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는 약 3,500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다고 추정된다.

경산에 도착해 경산신문의 최승호 대표를 만났다. 최승호 대표는 경산 코발트 광산 이야기를 처음 밝혀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경산에 도착해 경산 전통 시장을 들러 가족 대대로 이어온 곰탕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전통시장의 60년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경산 시장은 본래 경산 경제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도시화가 시작되자 젊은 사람들은 경산을 떠나 도시화된 곳으로 이주했다. 그러자 시장은 조용해지고 많은 상점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시장은 모든 것을 지역에서 해결하는 작은 경제임을 알게되었다. 전통시장을 걸으면서 현대화를 겪기 전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텅 빈 상점들이 을씨년스러운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예전 모습을 더욱 상상하려고 했었나 보다.

최승호 대표의 경산 신문 사무실로 이동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들었다. 최승호 대표는 처음으로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이 담긴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보면서 이 사건을 위해 연대한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지만 이 사건이 얼마나 깊게 감춰져있었는지 알게되어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코발트 광산이 있는 주변 땅에 대해 사유재산권 문제를 보여주는 정치 풍자 만화도  있었다. 만화 중 하나는 광산 부지에 골프장을 만드려는 계획을 풍자했다. 사유재산권으로 발굴 작업이 방해를 받는지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승호 대표는 기행 참가자들에게 두권의 책을 주었다. 한권은 발굴 작업을 기록한 사진을 담은 책이었고 다른 한권은 광산 관련한 주제로 그려진 정치 풍자 만화를 모아놓은 책이었다. 이러한 책을 무료로 받아 기뼜지만 동시에 이 광산관련 사건이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를 보게 되어 슬펐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경산 코발트 광산으로 향했다. 광산은 수직갱도와 수평갱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광산으로 들어가는 부분 중에 일부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다. 광산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 가파른 길을 올라야 했고, 이는 분명히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부분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을 배우는 그 시간에 깊게 빠져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산 코발트 광산에 대해 한국인들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기행이 외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드문 경험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수평갱도 중 한곳에 들어가기 위해 안전모를 썼다. 수평 갱도의 초입부의 천장이 낮았기 때문이다. 광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실제로 발굴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유해가 발굴된 실제 현장에 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광산 안에는 여전히 학살된 사람들의 피부조직이 분해되지 않고 남아있었다. 이는 분명히 마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힘든 경험이 될 것이었다.

광산을 나와서 발굴된 유해를 모아둔곳으로 향했다. 들어가기 전에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했고 안으로 들어가  최승호 대표는 의치가 담긴 주머니를 꺼내어 보여주었고 그 안에사 금니를 꺼내어 그 당시 금니를 할 수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주로 상류층의 지식인들이었고 이들은 북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되었다.  

사람들의 유해가 온전히 한 사람으로 맞춰지지 않고 부위별로 따로 담겨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조금은 감정적이 되었다. 하나의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는 유해를 보며 몇사람이 될지가 궁금해졌다. 나에게는 그 유해들이 단지 뼈가 아닌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언제 어떻게 그곳에 있었는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마무리를 하고자 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이 발굴 작업이 시작된지 오래되었고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모든 의문이 풀릴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글: 메리  조이스 데 호야(열린강좌 참가자) 번역: 황정은(사무국장, ISC)

** 본 글은 국제전략센터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