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배치 반대와 평화 촉구의 최전선, 소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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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대한(The 숲 영문본 편집국장, ISC)번역: 지민경, 예선희(번역팀, ISC)

마을로 통하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 소성리는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나뭇잎과 덤불, 나무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냄에도 불과하고,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고요해 보였다.

한 할머니는 이곳의 깨끗한 물과 공기, 집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자랑하시며, “여기는 아픈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마을의 위치 덕분에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셨다. “인민군들은 예의바르게 행동했고, 이 마을에 북한 병원을 세워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이곳으로 후송했다. 군인들은 마을의 할머니를 보며 고향이 생각난다고 말했다”고 하셨다.

소성리를 통하는 외길을 따라 몇 킬로미터 더 내려가다 보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배치된 곳이 나온다. 사드는 명목상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것 같으나, 배치 지역과 성능을 잘 살펴보면 사드의 진정한 기능이 중국발 미사일을 높은 고도에서 탐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드러난다[1]. 사드로 인해 소성리는 아시아 내 전쟁과 평화의 경계에 서게 되었다. 마을 주민과 성주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들은 사드 부품과 운용인력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도로를 봉쇄하고 있다. 필자와 동행인은 사드에 대항하는 마을 주민들의 평화투쟁에 대해 알기 위해 소성리를 방문했다.

사람들이 도로 봉쇄를 하고 있는 곳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의미의 싱크홀이 그려져 있다.

사드 배치 반대와 도로 봉쇄의 중심에는 마을 주민들이 있다. 가장 젊은 분이 60세이며, 대부분이 80,90세 어르신이다. 음군선 부녀회장님은 “솔직히 우리는 대단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평화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며, 현재와 같은 남북 긴장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남한은 사드를 배치한다. 우리는 남과 북이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를 원한다. 마을의 모든 어르신들은 한국전쟁을 겪었기에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핵무기가 있으니, 혹시라도 한 개만 떨어져도 온 나라가 없어질 수 있다. 그렇게는 하지 말자. 대화로 풀자”고 덧붙이셨다. 사드 반대운동 관계자들은 이 투쟁이 전자기 방사선[2]의 해로움에 대항하는 님비현상[3]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한반도, 역내, 세계 평화를 위한 투쟁으로 발전했는지 설명했다. 사드가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것은 전쟁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역내 각 국가가 다른 국가의 미사일과 미사일 방어 체계를 능가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군비 경쟁을 늘리게 될 뿐이라는 설명도 같이 들었다.

연세가 84세, 85세인 두 어르신은 “1950년 한국전쟁이 나던 해에 18살, 19살이었는데, 그 때 소성리로 시집을 왔다. 그 해에 전쟁이 발발해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였다”고 회상하셨다.

우리들은 사드배치 반대를 위한 312번째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성주 인근으로 이동했다. 촛불집회는 겨울의 차디찬 눈과 여름의 폭우를 견디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겨울에는 직접 만든 난로로 추위를 나고, 여름의 폭우에는 비옷을 입고 견뎠다”고 사드배치 철회 성주투쟁위원회 김충환 위원장님이 말씀하셨다.

촛불집회는 이 도시에서 사드가 완전히 철거된 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의지를 다졌다. “평화와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를 원한다면, 사드를 막아야만 한다. 우리의 의식이 이 정도로 높아졌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저항하는 이유”라고 김 위원장님은 덧붙였다. 사드 사안의 중요성은 소성리, 성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로 느껴지고 있다.

“나무를 때는 난로를 만들어서 사람들 사이 사이에 놓고 불을 피워 겨울을 났다”고 김 위원장임이 말씀하셨다.

밤 9시쯤 촛불집회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소성리로 돌아갔다. 도로를 봉쇄한 곳 옆에서는 오징어와 고구마를 난로에서 굽고 있었고,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날 밤, 한 가족이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나섰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타를 치고, 딸은 플룻을 불고, 아들은 난로의 불을 맡고 있다. 사실 이 가족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학창시절 때 예술 운동가로 학생운동을 한 경험이 있다. 부산에서 진행되던 촛불시위에 꾸준히 참여하다가, 이번 주말에는 캠핑을 가는 대신 텐트를 이곳에 깔기로 한 것이다. 필자의 동행인이 기타를 들고 연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연주가 이 투쟁 공동체로의 길을 열어주었고, 필자는 그 길을 따라 들어갔다.

“이 기타 연주해도 될까요?”                                            음악회의 주인공 가족

함께 한국의 민중가요를 부르고 나서, 그녀는 사회운동에서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렛잇비,” “이매진”을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몇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일어나야 했지만, 사람들이 ”한 곡 더”를 외치는 통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30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음악, 후라이드 치킨 그리고 막걸리로 다져진 유대감이 아침까지 이어졌다. 필자의 어색함이 가시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가갈 수 있었다.

필자가 가톨릭 미사에서 노래를 부른 정진석씨에게 칭찬의 한 마디를 건네자, “나는 공공장소에서 한 번도 노래나 기타를 연주해 본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는 대구에서 왔고, 4월 26일 투쟁 이후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던 그 날[4], 800명의 경찰이 도로 점거투쟁을 하는 사람들과 어르신들을 짓밟고 사드의 주요 부품을 기습적으로 들여왔다. 4월 26일 이후, 그는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여기서 지키고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의 김채영씨는 지난 3월에 롯데가 골프장을 사드 배치지로 넘기는 문서에 사인을 했다는 발표가 나자 이 곳으로 와 투쟁하기 시작했다. 6년 전, 미 해군 기지 설립을 반대하는 강정마을의 투쟁을 보고,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평화 운동에 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나타난 새로운 정치적 지형에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전 정부의 사드 배치 시행 과정을 조사하고, 적절한 법적 절차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사드가 한국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사이에서 여론은 50 대 50으로 갈렸다. 김씨는 이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사드의 근본적 한계와 진정한 목적이 드러나면 여론은 사드배치 반대로 돌아설 것이고, 사드를 완전히 막을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어떤 분이 아침식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면서, 점심은 매운 콩국수가 될 거라고 했다. 필자는 이영우씨 옆에 앉았다. 그는 포항의 기술고등학교의 교사이고 전교조 조합원이라고 했다. 그는 전날 밤 현란한 손가락 기술을 뽐내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보통은 드럼을 친다”고 말했지만, 그가 학생들을 위해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역시 4월 26일 이후부터 계속해서 이곳을 찾고 있다. 그는 숙취가 있다며, 국물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숙취에는 콩나물국이 최고” (왼) “오늘 점심은 비빔국수입니다. 여러분들을 여기 계속 붙잡아두려고 이제부터 일주일 치 식단을 얘기해 주려고요.”(오)

필자는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지역주민들, 그들의 이야기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 듣고 또 나누었다. 떠나는 날,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신 분과 얘기를 나눴다. 그의 부인은 일행이 지낼 숙소를 알아봐주고, 음식 등을 챙겨주셨다. 그녀는 매일 같이 운전을 하고 여기에 온다고 한다. “막히지 않으면 30분 정도 걸리고, 막히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는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주말이면 매번 온다고 한다. 가끔 아이들도 데리고 오기도한다고. 결혼 기념일에는 일을 쉬고, 두 분이 망설임 없이 서성리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평화의 최전선을 더욱 강화시킬 많은 사람들의 결의를 들을 수 있었던 유의미한 방문이었다.

 
  1. 사드는 높은 고도에 있는 미사일 탐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성주에 배치해서는 남한 인구의 절반 가량이 거주하는 서울을 목표로 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탐지할 수 없다.
  2. 미 육군의 AN/TPY-2(사드 레이더) 사용자 매뉴얼에 따르면, 사드의 전자기 방사선은 심각한 화상과 내장기관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레이더 전방 100미터 이내의 출입을 금지해야 하며, 전방 3,600미터 이내의 지역에는 허가 받은 사람 외에는 출입을 금해야 한다.
  3. NIMBY (Not in my backyard). 유해하거나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시설을 인근 지역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
  4. 탄핵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자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권력을 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