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부르는 매카시즘

글: 매튜 필립스(네트워크팀, ISC)

   편집: 송대한, 마리암 이브라힘(네트워크팀,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사진: 피플스디스패치

8월 5일에 뉴욕타임스에서는 중국에서 자금 지원을 받아 “중국의 논리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의 일부라며 반전 단체와 개인(특히 로이 네빌 싱감)을 비난했다. 8월 9일, 이에 화답하듯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사법부에서 “싱감과 좌파 친중국 공산당 조직이 외국인 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 FARA)을 준수하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중 정서가 고조되는 가운데, 인도의 우파 나렌드라 모디 정부에서는 정보방송부 장관이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하며 “뉴스클릭(모디의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사)이 ‘반인도 의제’를 전파한다”며 비난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10월 3일, 경찰이 뉴스클릭 언론인을 체포하고 사무실을 급습하면서 모디 정부는 언론의 자유에 철퇴를 휘둘렀다.


세계 질서가 뒤집히는 가운데, 미국은 자국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중국과 러시아가 공격적이라는 논리를 펴고, 우크라이나와 중국 주변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미국의 군사화를 비판하는 반전 목소리를 공산주의 딱지를 붙여 탄압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양국은커녕 러시아 하나와도 직접 전쟁을 치르기도 어려운 가운데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중국을 둘러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군비 증강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세계에서 다양한 위기가 발생하는데도 미국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촉진한다고 주장하며 더 큰 갈등으로 전쟁을 이끌고 있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평화와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묵살하고 신냉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적색 공포’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체해야 한다. 그러려면 계속 적색 공포를 실현하고 강제하는 체제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전쟁 중심 전략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의 중국 억제 정책은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바마가 2010년에 발표한 ‘아시아로의 회귀’는 동북아시아에서 미 해군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중국이 호전적이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그 이후, 미국의 군사화는 중국을 위협하기보다는 “중국 지도자들이 호전적인 정책을 적용해야 [중국이]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고 믿게 했다.”

실제로, 미국은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역학 구도를 부추기고 있다. 러시아, 중국과 전쟁을 치를 실탄도 없고, 이를 생산할 능력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세계의 다양한 위기를 둘러싸고 긴장 완화, 평화, 집단적 행동의 필요성에 관한 토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신에 미국 군수산업 역량의 극적이고도 신속한 증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난제이자 기후변화에도 재앙적이다. 전쟁 추구 욕망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평화의 목소리를 탄압하는 신매카시즘이다. 평화 담론을 여는 데는 신매카시즘의 형성과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색 공포

첫 번째 적색 공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양심적으로 반전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을 겨냥했다. 사회주의자가 뉴욕 의회에서 쫓겨났고, 급진 단체에 정부가 잠입했으며, 많은 사람이 체포되고 추방되었다. 1920년 파머 레이드로 6,000명이 체포되었고, 이 중에서 10%가 추방되었다.


이 시기에 1939년 해치법, 1940년 스미스법, 1947년 행정명령 9835호(EO9835) 등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에 매카시즘이 가능하게 되었다.


해치법은 공무원이 정치 조직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했고, 스미스법에서는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일을 지지하는 것조차 불법화했으며, EO9835의 경우 충성 서약을 사회적, 법적 규범으로 제도화했다. 이 모두가 편집증을 퍼뜨린 소송전을 위한 기반을 만들었으며 적법한 절차를 위반하고 사회를 분열시킨 연좌제 개념을 일반화하고 합리화했다.


매카시즘은 조지프 매카시가 1면을 장식할 만한 고위급 대상자 명단을 무모하게 작성하면서 소속 당에서조차 반대와 반발이 생겨나면서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매카시즘은 “미국 좌파를 파괴하고 정치 스펙트럼을 전체적으로 더 좁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을 신냉전 맥락에서 적국으로 만들기 위해 1950년대의 전술을 재활용하고 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프리즘(PRISM) 프로그램이다. 정적을 감시하고 마녀사낭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이 프로그램은 J. 에드거 후버의 감시가 매카시즘을 부채질한 것과 닮았다. 


프리즘 프로그램은 미국 정부의 정치-경제적 첩보 활동을 위한 도구이다. 2022년에 “[프리즘의 대상] 대부분이 대테러 방어보다는 정치적 목적의 감시 대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쟁자인 밋 롬니가 러시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에 1980년대로 “퇴보”하는 것이라고 조롱한 지 4년도 채 되지 않아서 민주당은 롬니가 주장했던 “퇴보”를 수용하고 러시아를 악마화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언론인 글렌 그린월드는 어떻게 서구 엘리트 계층이 “러시아를 다방면의 악당”이라고 하면서 활용하는지 설명한다. 러시아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패배, 슬로바키아의 좌파 로베르트 피초의 승리, 니제르의 프랑스군 추방, 미국 내 대중의 회의주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감소, 나치 친위대원에 박수를 보내는 촌극을 빚은 캐나다 의회 등 여러 사건에서 원인으로 비판받았다. 


루비오 같은 고위급 정치인이 양심의 자유를 범죄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견이나 반대를 표출하는 목소리가 줄어들 것이다. “적대적인 국가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미국 선거에 갈등의 씨앗을 심고 선거의 신뢰성을 떨어트린다”는 이유로 우후루 운동을 수사한다거나, 피플스 포럼 같은 단체가 네빌 로이 싱감이 좌파 단체에 재정 후원을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타깃이 된 것처럼 말이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담론을 제한하는 것은 실제로 큰 영향이 있다. 2023년 4월에 유출된 펜타곤 고위급 보고서에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에 비관적인 평가가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언론의 담론은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 임박했다는 내용으로 도배되었다. 이는 의회의 자금 지원안이 원활하게 통과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솔직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졌다면, 과연 이런 예산 지출안이 쉽게 통과되었을까.


검열삭제된 평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민주당은 매카시즘을 완전히 수용하고 트럼프가 더 강경하게 반러시아 입장을 취할 것을 압박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바이든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나가던 즈음에 러시아는 자국의 안보 우려를 반영한 새로운 안보 체계를 유럽에 제안했다. 나토(NATO)가 러시아 국경 쪽으로 확장하는 것을 멈추라는 러시아의 핵심 요구는 거부당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나토 확장이 러시아의 공격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던 바이든을 포함한 미국과 나토의 고위급 인사의 공식 기록이 은폐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논란의 여지가 없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 금기시된 것이다. 그리고 외교적인 해법을 제안한 사람은 모두 푸틴 추종자라고 낙인찍었다.


부시의 “우리랑 함께하거나… 적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현재의 새로운 적색 공포로 표현되는 이분법적인 관점은 사고를 차단하는 세계관을 만든다.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협상으로 평화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비애국적이며, 중국에 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친중국이라고 치부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중국의 인권침해 담론이 지배적이지만, 8,000만 명의 중국인이 지난 수십 년간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중국의 인권침해에 관한 실제 증거는 빈약하기만 하다.


또한 언론의 전쟁 관련 보도는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해 해야 할 행동에 관한 보도를 압도한다. 미군 점령지에서 벌어진 끔찍한 행위를 폭로한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 어산지의 감금 사실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에 관한 대중 심리학적 프로필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매년 “1만 명 이상의 군인을 동원한 강의, 훈련, 연습을 8년 넘게 제공”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나토 회원국처럼 대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부추겼는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두는 마블 만화에서 서구는 민주주의가 꽃피는 정원이고 그 외는 악마이며 독재의 정글이라고 묘사하는 것과 같은 주류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적이 중국이라고 하는 이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서구 언론은 중국이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할 때만큼은 좋은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신조를 매번 저버린다. 중국이 마지막으로 무력 갈등을 벌인 것은 1979년에 4주간의 중국-베트남 전쟁이었다.


그에 반해, “세계 평화유지군을 자처”했던 1945년부터 미국은 20년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인 것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끊임없이 전쟁과 침략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른 러시아 내지는 중국 스파이라는 풍선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미국이 허구의 적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기를 생산하고 전쟁 산업이 이윤을 얻으려면 대중의 동의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실제이든 아니든, 적이 없다면 다른 대부분 국가 국방 예산을 훨씬 웃도는 군비 지출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