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평등: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

인터뷰: 로리 애인스워스(Rory Ainsworth)
기사 편집: 매튜 필립스(Matthew Phillips)

국제전략센터는 6월과 7월 퀴어 이슈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행사와 학습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무비나잇과 북클럽 모임에서 진보적인 시각에서 보는 미디어에 표현되는 퀴어와 퀴어 이론, 미국에서 발생했던 HIV/에이즈 유행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했습니다. 7월 28일 두 달 동안의 모임을 마무리하며 한국성적소수자문화센터의 홀릭 대표를 초청해 진보포럼을 진행했습니다. 

센터: 간단한 자기 소개와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소개해달라.

홀릭: 나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이다. 2006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지금 활동하고 있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알게 되었다. 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이 분야의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2002년에 창립되어 주로 문화 활동과 교육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센터에서 반상근 활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전업 활동가로 그리고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4회를 맞이하고 있는데, 9회때부터 축제 자원봉사자로 참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ISC: 2007년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10만 명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활동가의 단식 농성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에도 여전히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 밖에도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건강권은 어떤 상황이며 건강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홀릭: 먼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의 트랜스젠더의 차별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특히 의료진과 대면했을 때 매우 불편함을 경험하는 트랜스젠더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그들은 병원에 편히 갈 수 없고 자신의 신분과 성별을 위협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밝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트렌스젠더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게는 공통적이다. 

의료진의 인식수준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도로 낮다. 그리고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에는 성별을 식별하는 숫자가 있다. 이 성별을 식별하는 숫자를 바꾸려면 생식기 전환 수술을 포함한 성전환수술을 완료해야만 한다. 실제로 성전환 수술을 받으려면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 필요하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열린 마음을 가진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것도 매우 어렵다. 의료적 조치가 필요한 트랜스젠더에게는 건강권과 의료 접근권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레즈비언과 트랜스 남성도 산부인과에 대한 접근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아래와 같은 몇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왔다. 

  • 2013년 대한심신산부인과학회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그리고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성소수자, 트랜스 남성과 여성이 산부인과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는 포럼을 개최했다. 

  • 순천향대학병원은 성소수자가 필요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안전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젠더클리닉을 설립했다. 이어 강동성심병원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도 젠더클리닉이 생겼다. 하지만 이런 젠더클리닉이 모두 서울에 있다는 점이 한계이다. 

  • 2021년 서울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성소수자 건강권과 의료라는 강좌가 개설되어 학생과 전문가에게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 한국에서는 HIV와 에이즈에 대한 혐오가 심하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는 HIV와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성소수자의료연구회가 만들어졌고 차별없는병원이라는 책도 이 연구회에서 발간했다. 

  • 최근 SHARE라는 단체가 설립되었는데, 이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기반에서 재생산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리고 SHARE는 재생산 권리에 대한 더 넓은 접근을 제공하기 위해 클리닉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 서울의 마포와 은평 지역에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의해 운영되는 병원들이 있는데, 이 병원들은 성소수자와 에이즈 감염인이 쉽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ISC: 현재 한국에서 성수수자의 가족구성권은 어떤 상황이며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위한 투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한국에서 그 동안 성소수자 운동의 투쟁의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홀릭: 올해 4월 국회에서 매우 의미있는 법안이 발의 되었다. 기본소득당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최초로 발의했고,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로 가족구성권3법을 발의했다.  가족구성권3법은 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그리고 생활동반자법이다. 

지난 대선과 이전 정부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반대가 심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는데,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이런 법안까지 발의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은 노인 빈곤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전통적인 성 규범에 기초하지 않거나 전적으로 혈연관계에만 기반한 가족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매우 적음을 알 수 있다.

성소수자 공동의 의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무지개행동이라는 연대체가 있는데, 올해는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혼은 한번도 모두를 위한 제도였던 적이 없었다. 결혼할 권리, 결혼하지 않을 권리 모두 보장받아야 한다. 기존의 가족을 해체하는 운동이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에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에는 다양한 투쟁이 있다. 예를 들어, 퀴어 청소년들이 학대 받는 집이나 학교를 벗어나 청소년 주권권을 위한 투쟁이 있다. 또한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트렌스젠더의 투쟁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운동들이 기존의 가족제도를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ISC: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00년에 시작되어 20년이 넘게 진행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어우러져 즐기는 장을 만드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 매해 여름 서울에서 개최되는 복합/공개/문화행사입니다. 하지만 개최를 준비할때 마다 매번 탄압에 직면합니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준비과정과 진행과정에서는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나는 것으로 이러한 탄압이 두드러지게 드러났습니다. 이밖에도 어떤 탄압이 있었습니까? 이런 탄압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홀릭: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할 때마다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장소를 선점하는 것이다. 장소는 서울축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모든 퀴어문화축제가 직면하는 문제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진영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주도하고 있다. 보수적인 기독교가 조직적으로 성소수자를 반대하고 축제를 방해하고, 우리가 제안한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며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스럽다.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이런 기독교 교회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더 강해졌다. 지난 8년간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했지만, 올해는 서울시가 축제를 승인하지 않았다. 대체 장소를 찾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여는 입장에서는 첫 번째 원칙은 축제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성소수자 반대 진영에서는 격렬한 혐오의 목소리를 낸다. 축제를 할 때마다, 우리가 행사장 안에서 즐기고 있어도, 혐오의 목소리를 높이고 축제 참가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안전한 축제 장소를 찾기 위해 경찰과 협력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찾은 장소는 4차선 도로였다. 이 도로를 막고 아무 문제 없이 축제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매년, 장소를 확보하려고 할 때마다, 집회신고를 하려고 경찰서에서 줄서기를 한다. 올해는 수십 명의 활동가와 시민들이 5일동안 밤을 새면서 3개의 경찰서에서 집회 신고를 해서 장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안전하게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50명으로 시작한 축제가 지금은 매년 13만에서 15만명이 참가하는 축제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많은 시민들이 성소수자의 앨라이로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ISC: 20년 넘게 진행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다면?

홀릭: 지난 20년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했다. 가장 큰 성과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가시화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없거나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어떤 행사인지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다. 물론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성소수자를 가시화하는데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전화를 걸어 누구인지 소개하고 문의를 했을 때, "퀴어문화축제다"라고 하면 '퀴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퀴어문화축제라고 소개할 때 대부분 사람들이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운동의 성장과 우리가 이룬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다수의 성소수자들은 학교나 가족, 직장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전히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에 차별을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이 지난 20년 동안 통과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성소수자가 안전하게 보호받거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입법 수단이 없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겪는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