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방문기

글: 마리암 이브라힘(네트워크팀,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2023년 여름, 20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비단 먼 친척을 만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조국과 관계를 맺고, 이스라엘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점거 아래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이 어떠한지에 관한 나의 이해를 새로이 하기 위함이었다.

어린 아이였을 때와 청소년 시기에 친지 대부분이 살던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를 방문했던 기억은 평범했다. 비행기로 대서양을 건너 요르단에 내려서 이모와 삼촌을 몇 분 만나고, 서안 지구로 가는 국경을 넘기 위해 꽤나 힘든 여정을 거쳤다. 팔레스타인까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스라엘 국경 경비대와 조우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인 1차 및 2차 인티파다가 벌어진 시기에 방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모든 형태의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이스라엘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내가 나의 조국에 되돌아가기까지 20년이 걸린 이유를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에 간 것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 여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캐나다에 계신 엄마가 전화를 걸어 팔레스타인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조카가 내내 팔레스타인에 가자고 졸랐고, 이번 여름에 함께 팔레스타인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2003년에는 2차 인티파다가 일어났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프차와 탱크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모습은 예사였고, 젊은 팔레스타인인이 점령군에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흔했다. 나도 장례식과 집회에 여러 번 참여했고, 검문소에서 막힐 때면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구류된 모습을 보기도 했으며, 임의 도로 폐쇄와 봉쇄 때문에 나블루스, 툴카렘 같은 도시로 가려면 제대로 된 길이 아니라 수풀을 헤치고 언덕을 넘어야 했다.

서안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직접 행동과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 등 크고 작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점령에 저항하고 있지만, 이번 방문에서 인티파다 때와 같은 격렬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군의 위협과 정착민 폭력이 실제가 아니라거나 그런 일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전에 서안 지구에 갔을 때는 젊은 남성 여럿이 살해나 납치당했고 이스라엘 정착민이 팔레스타인인을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다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그랬으리라.

풍경이 상당히 많이 변한 게 우선 눈에 들어왔다. 택시를 타고 야이요스에 있는 친지 집으로 가는 길도 한때는 익숙했던 풍경이 이제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뀌었다. 가는 길에 국제법상으로 불법인 이스라엘 정착촌 수십 개를 지나쳤다. 각 정착촌 입구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출입을 막고, 정착촌 거주민만 보호하는 이스라엘 검문소가 있었다. 이런 정착촌 대부분이 원래 팔레스타인 마을이나 도시였던 곳에 건물을 지으면서 계속해서 면적을 더 넓히고 있었다. 그리고 정착촌 건설을 촉진하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으로 정착촌에 사는 인구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정착촌 사이를 잇는 도로에는 이스라엘 사람만 타는 버스가 많이 다녔고, 히브리어로 이스라엘인에게 이 불법 거주지역에 와서 살라고 장려하는 대형 광고판이 여기저기 보였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기가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영토라는 점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물어보면 다양한 의견을 듣게 될 것이다. 이 질문은 의견이 분분한 것이 맞지만, 개인적으로는 절대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밑바탕에는 식민주의 문제가 있다. 그 땅에 살던 원주민을 쫓아내고 돌아오지 못하게 한 대표적인 사례이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많이 그 땅에서 없애기 위한 인종 청소 시도이며, 자기 민족을 제외한 나머지를 탄압하고 예속하려는 점령이다. 또한,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을 포함하여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인과 매우 다른 취급을 받는 현대 아파르트헤이트를 잘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언제나 일국가론을 지지했다. 개인적으로 같은 영토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동일한 권리, 투표권,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두 국가 해결론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 국가 해결론이 야파, 아카, 하이파(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영토로 선포한 지역)로 돌아갈 권리가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도덕적으로 파멸한 생각이라고 본다. 그리고 두 국가론이 불가능한 이유가 또 있다. 이는 내가 그동안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 방문을 통해 직접 보고 인정하게 된 사실이다. 즉, 수십 년간 서안 지구에 불법 정착촌의 확산을 장려한 이스라엘 정부의 노력으로 현지 상황이 급격히 변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가 어떤 모습일지 사실 상상하기가 어렵다. 여러 지역 사회가 서로 단절되어 있고, 생활에 필요한 토지와 수자원도 유대인만 살 수 있는 정착촌 때문에 사용하기가 어렵다. 이는 이스라엘이 자행한 탄압, 불평등, 아파르트헤이트를 국제 사회가 용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오늘날 서안 지구의 현실이다. 매일 이렇게 계속되는 영토 강탈, 정착촌 확대, 군사 점령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일상의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서안 지구에 방문했던 2주간은 그동안 내가 느꼈던 것 중 가장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들의 관대함, 웃음, 과수원에서 보낸 시간, 오래된 시장에서 본 상인들의 흥정과 카나페의 맛, 늦은 밤 즐기는 바비큐와 뜨거운 민트차, 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와 추억을 나누었던 가족 모임까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이유에도 우리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하루하루 즐거움을 찾았다.

팔레스타인 활동가이자 시인인 라피프 지아다의 시를 인용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우리 팔레스타인인은 그들이 마지막 하늘을 점령한 다음의 삶을 가르치죠.

우리는 그들이 정착촌과 아파르트페이트 장벽을 짓고, 마지막 하늘을 차지한 다음의 삶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삶을 가르칩니다.”

다음은 이번 방문 중에 찍은 사진이다.

친척들이 사는 야이요스 마을에서 본 풍경. 이 마을은 그린 라인(휴전선)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지평선 너머로 고층 건물은 이스라엘 도시이다.

야이요스에서 본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장벽. 일부 지역에서는 높이가 8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장벽으로 되어 있지만, 야이요스에서는 군대가 순찰을 도는 도로에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를 세워 놨다. 이 장벽을 세우는 탓에 야이요스의 많은 가구의 농장 땅이 몰수되었다.

나블루스에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이자 유명한 알자지라 언론인 셰린 아부 아클레가 서안 지구의 제닌 난민촌에서 보도를 하던 중 이스라엘군에 살해된 것을 기리는 그래피티가 있다.

나블루스의 구도시 벽에는 이스라엘군과 싸우다 사망한 팔레스타인 저항 투사를 기념하는 사진이 걸려 있다.

야이요스 인근 주핌 언덕에 세워진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 지금도 건설을 계속하며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