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 제국주의

글: 정도영(컨텐츠팀,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레닌 서거 100주기를 맞아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는 레닌의 역작 <제국주의론>의 21세기 버전을 내놓았다. “초(超) 제국주의”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트라이컨티넨탈은 세가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미국이 어떤 방법으로 전 세계를 재래식 전쟁과 경제 전쟁으로 몰고 가는지를 살펴본다. 3월 9일에 노콜드워에서는 전 세계의 지식인, 활동가, 언론인을 초청하여 라틴아메리카의 봉쇄부터 인도-태평양 섬의 군사화, 가자지구의 집단 학살에 대한 지원 등 초 제국주의가 남반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다.

비자이 프라샤드는 제국주의가 네 단계를 거쳐 발달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유럽 제국들이 권력과 영향력을 다투었고, 이는 두 번의 세계 전쟁으로 비화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세계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이전 자본주의 열강이 미국의 세력권으로 흡수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이 사회주의 진영을 건설한 것이다. 동시에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새로 나라를 수립한 국가들은 비동맹 운동을 결성하며 양쪽 진영에서 벗어나 독립을 유지하고자 했다. 소련이 무너지고 난 이후, 미국은 미국의 금융 및 군사 권력으로 만들어진 규제가 없는 시장이 특징인 일극 체제를 수립했다. 이제 우리는 남반구의 신흥 국가들이 미국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도전장을 내미는 다극화 단계에 들어와 있다.

세계는 어떻게 분할되어 있는가?

북반구와 남반구는 단순히 지리적인 용어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용어이기도 하다. 북반구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블록이다.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으며, 세계 체제를 자본가 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만든다. 또한 영국과 기타 영어권 정착민 국가, 이스라엘이 중심에 있다. 이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내핵으로, 기밀성이 매우 높은 정보 네트워크인 파이브 아이즈의 구성원(이스라엘은 비공식적인 여섯 번째 구성원)이다.

그다음 고리에는 서유럽의 핵심 9개국이 있다. 이 국가들은 전 세계 공급망의 상위에 포진하고 있으며, 파이브 아이즈가 확대된 나인 아이즈에 속해 있다. 일본과 몇몇 소규모 유럽 국가(예: 그리스, 이탈리아)가 세 번째 고리를 형성한다. 이 국가들, 특히 일본은 가장 안쪽의 고리와 통합 수준이나 안쪽 고리의 영향력 수준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가장 바깥쪽의 고리에는 이전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유럽 국가가 포함된다. 이 국가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군사 개입을 통해 미국 진영으로 편입되었다. 이 국가들 전체가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2%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GDP(구매력평가 기준)의 40.6%를 차지한다. 미국 주도의 군사 블록도 전 세계 군비 지출액의 74.3%를 차지하여 경악할 정도이다(미국만 50%가 넘는다).

나머지 85% 정도가 남반구 국가로, 145개 UN 회원국이 여기에 속한다. 북반구와는 달리, 남반구는 하나로 통합된 블록이 아니다. 대신, 남반구는 사회주의 국가(중국, 베네수엘라, 베트남, 라오스, 쿠바, 북한 등), 자주를 추구하는 국가(러시아, 이란 등),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국가(남아프리카공화국, 볼리비아 등), 새로운 비동맹 국가(국내 부르주아지의 이해가 북반구 국가 부르주아지의 이해와 상충하는 인도, 튀르키예 등), 그 외 세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다양한 남반구 국가, 마지막으로 미국과 관계가 공고한 국가(한국, 필리핀 등) 등 대략 6개 그룹으로 나뉜다.

북반구는 남반구의 자주권을 무시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대부분 부문에 접근하고, 남반구의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부와 노동력은 전 세계적인 자본 축적을 위해 착취당한다. 미국은 군사 개입과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금융 기관(약탈적 차관을 활용하여 남반구 국가에서 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부채의 덫에 빠지게 만듦)을 통해 이런 체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렇게 부가 위로 흘러가는 구조로 인해 남반구는 기아와 대량 실업에 빠지게 된다. 브라질만 해도 글로벌 기업의 착취로 7만여 명의 노동자가 생산 부문에서 쫓겨났다.

변화하는 형세

지난 35년 간 북반구의 경제 성장은 계속해서 둔화한 반면, 남반구는 이와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1993년에 북반구의 전 세계 GDP(구매력평가 기준)는 57%였고, 남반구는 42.8%였다. 2023년이 되자 남반구는 전 세계 GDP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한 반면, 북반구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대로 내려앉았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의 형세는 많은 개발도상국의 지배 계급을 강화하여 미국 주도의 질서가 만든 여러 제한에 도전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국가 중 중국은 일대일로를 비롯하여 세계은행보다는 남반구에 차관을 더 많이 제공하는 수출입 은행 등을 활용하여 남반구에 더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대안 경제 블록인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도 신개발은행과 긴급외화준비협정을 통해 IMF의 글로벌 금융 독점을 위협하고 있다. 긴급외화준비협정은 개도국융의 유동성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외화 보유금이며, 신개발은행은 인프라 및 산업 개발용 차관을 남반구에 제공한다.

하이브리드 전쟁

글로벌 헤게모니는 경제, 금융, 군사의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미국은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독점을 재확인하고 금융 및 군사력을 행사하려 한다. 스리랑카 인류학자인 다리니 라자싱햄 세나나야케는 발제 중에 IMF가 세 가지 전략으로 중국 차관의 영향력을 약화한다고 했다. 첫 번째 전략은 국가들이 계속해서 똑같은 벌처 펀드(부실 자산을 싼 값에 사서 가치를 올린 뒤 되팔아 차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 신탁 기금 - 옮긴이)에서 돈을 빌리게 만들고 이를 국가 채무로 확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각국 정부가 공공 부문 지출을 줄이거나 아예 민영화하도록 만드는 긴축 정책을 도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마지막 전략은 채무국을 압박하여 인프라, 토지, 에너지 등 전략 자원을 매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채무라는 덫으로 부족하면 미국은 제재를 통해 독립적인 길을 걷고자 하는 국가에 벌을 준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역내 통합을 추구하고 먼로 독트린을 종식하려 하자,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미국 안보와 외교 정책에 대한 지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했다. 시몬 볼리바르 연구소의 카를로스 론 소장은 미국에 비해 경제력과 군사력이 한참 달리는 베네수엘라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며, 미국은 그 위협에 아랑곳 않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930개의 조치를 시행했고 남아메리카에서도 가장 가혹한 금수조치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사례처럼, 미국은 군사 부문에서 가장 많은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 앞서 말했듯이, 이스라엘은 미국과 특수 관계에 놓여 있다. 천연자원, 특히 원유를 외국에서 추출해 가는 것 때문에 반미 감정이 대중적으로 들끓는 지역에서, 이스라엘은 예외이다. 미국의 변함없는 우방으로 자리하면서 미국도 이스라엘에 막대한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국가이며, 이스라엘 무기 수입의 3분의 2는 미국산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집단 학살은 미국의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IMEC) 건설과 연관되어 있다. 이 경제회랑이 완성되면 중국이 이 지역에 통합되는 것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언론인이자 작가 로키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3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85%가 터전을 잃었다면서, 세계 최대의 정유회사들이 가자지구의 유전 탐사와 관련하여 이스라엘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음을 강조했다. 

앞으로의 길

미국이 자국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더라도, 남반구는 세계 무대에서 끊임없이 부상할 것이다. 2030년이 되면 브릭스 플러스(브릭스+)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국가개발은행에서는 현지 통화 결제를 통해 달러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이 국가들은 유엔 헌장을 옹호하는 우호국 그룹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유엔이 지배하는 국제기구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남아공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한 역사적인 소송 외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민주화"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남반구 내의 더 큰 통합은 민족해방 투쟁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브레이크스루 뉴스의 라니아 칼레크가 말했듯이, 팔레스타인의 무장 저항은 이란의 군사 지원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규모로 커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중국이 미국 제재에 반발했기에 가능했다.

북반구에서 배제된 부르주아지가 다극주의를 이끄는 측면도 있지만, 남반구 내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극 시대가 도래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국제민중총회(IPA)이다. 자본주의와 신식민주의와 결별한 새로운 국제 질서를 건설하기 위해 IPA는 저임금 노동자를 동력으로 삼는 군사적 모험이 벌어지고 긴축정책이 사회주의를 다시 주류로 등장시킨 남반구, 북반구의 대중 단체를 조직하고 있다. 초 제국주의시대 모순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지만,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은 이 지구에서 가장 억압받는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