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 오면 우리의 노래가 불릴 것이다
글: 팅스 착(트라이컨티넨탈)
번역: 김지은 (서울여성회), 이재오(국제전략센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임을 위한 행진곡, 1981
2025년 11월 1일, 한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No King: Trump is not welcome!’ (왕은 없다: 트럼프는 가라!). 이 시위들은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반대하여 조직된 투쟁이었습니다. APEC 회의와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는 이전에 발표한 바와 같이 관세를 통해 한국으로부터 3,5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강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세계 여러 나라, 특히 글로벌 사우스를 굴복시키려는 트럼프 정권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일 뿐입니다. 경주에서 APEC 회의가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그 근처 다른 곳에 수백 명이 모여 국제민중회의를 개최해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경제를 촉구하는 국제민중선언문을 낭독하고 채택하였습니다.
홍성담, 대동세상, 1984.
민중회의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은 전두환의 군사독재 정권(1980~1988)에 맞서 투쟁하다 학살로 끝난 1980년 광주항쟁의 열사들을 기억하는 묵상을 한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81년 백기완이 쓴 이 곡은 광주항쟁의 열사들을 기리기 위한 곡으로, 한국 사회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묵상과 노래로 함께 열사들을 기리는 이 '민중의례'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던 전두환 정권의 국민의례에 대한 의식적인 저항으로 시작된 전통입니다.
저는 민중회의에 참여하려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한국 정치 운동에서 '민중가요' 전통이 가지는 역할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민중가요는 전두환 정권을 비롯하여 1961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군사독재 체제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된 한국의 음악 장르로, 오늘날에도 사회운동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이번 예술 뉴스레터는 국제민중회의 집회에서 공연한 예술공동체 마루의 회원들, 그리고 최근 결성된 서울여성회 민중가요 노래패 이음의 회원들과 나눈 대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들과 이야기하며 살아 숨 쉬는 민중가요 전통이 조용한 부활을 맞이하고 있으며 젠더 이슈, 그리고 극도로 상업화된 K-팝 산업과도 새롭게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재에 맞서 통일을 외친 민중의 노래
경주에서 열린 국제민중행동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사람들(오른쪽)
민중가요는 주류 대중가요와 달리, 민중을 위해, 민중이 만들어낸 노래를 뜻합니다.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는 민중가요를 만드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971년 군사독재 정권은 민중가요의 선구자 김민기의 노래 '아침이슬'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여러 방법을 통해 아침이슬을 찾아냈고, 이 곡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 중 하나가 되어 아직도 집회에서 불리곤 합니다.
예술공동체 마루의 강효준 활동가는 300만 노동자가 파업에 나서 마침내 민주적 개혁을 쟁취해 낸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민중가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87년 항쟁 이후에 민중가요 창작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중운동에 참여한 많은 이들에게 민주화 투쟁은 1945년 분단부터 1950년대 한국전쟁 중 제국주의 세력이 저지른 파괴, 그리고 1957년부터 시작된 미군의 한국 영구 주둔에 맞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민족해방, 그리고 통일운동과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1947년 안병원이 작곡하고 그의 아버지 안석주가 작사한 ‘우리의 소원’과 같은 노래는 한반도 통일을 향한 염원을 보여줍니다. 다른 많은 노래는 음악적 서사 장르인 판소리나 무속 의식인 굿과 같이 식민 지배를 견디고 살아남은 민족 전통을 오늘날의 투쟁을 위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새로 만들어지는 노래가 훨씬 적어졌는데, 이는 한국 진보 운동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강효준 활동가는 “사회운동 자체가 쇠퇴해 있기 때문에 예술운동도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맞서 예술공동체 마루를 비롯한 예술운동가들은 민중가요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효준 활동가는 “계속해서 새로운 곡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노래로 만드는 것”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마루는 오늘날 민중의 투쟁을 대표하는 음악을 통해 사회운동의 토대를 넓히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혁명의 시기가 와서 세상이 뒤바뀐다면 민중가요가 사람들에게 널리 불려질 것”이라고 강효준 활동가는 덧붙였습니다.
서울여성회 민중가요 노래패 ‘이음’ 또한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을 비롯해 민중의 투쟁을 노래하는 민중가요를 만들겠다는 비전이 있습니다. 서울여성회 홍보국장이자 노래패 패짱인 김지은 활동가는 2025년 초 ‘이음’의 첫 공연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순간을 회상하며, “사람들은 민중가요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남성들이 모여 부르는 장면을 떠올리기에 여성 노래패의 존재가 관객을 감동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김지은 활동가는 ‘이음’에서 여성들이 여성의 투쟁을 주제로 쓴 민중가요를 발굴해 부르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노래가 매우 적을뿐더러, ‘여성들의 투쟁에 대한 노래라 해도 남성의 시각에서 성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성해방에 있어 민중가요가 가지는 의미와 역할을 확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활동가들은 정치적 폭력을 규탄하고 투쟁에 참여하는 물결을 넓히기 위해 K-팝과 같은 대중음악과의 장르적 차이를 넘어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탄핵과 함께 한 K-팝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표결을 앞두고 열린 12월 6일 탄핵 집회. 출처: 국제전략센터.
우린 노래해 더 나아질 거야
우린 추억해 부질없이 지난날들 바보같이 지난날들
그래도 너는 좋지 아니한가
강물에 넘칠 눈물 속에
우리 같이 있지 않나
이렇게 우린 웃기지 않는가
울고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세상이 멋지지 않았는가
– 좋지 아니한가, 2022 유다빈밴드 커버
2024년 12월 3일, 우파 성향의 윤석열 전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헌정 질서와 국가 안정을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에는 정부를 위협하는 친북 공산 세력이 포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계엄령 선포는 곧 대규모 시위와 서울 곳곳의 농성으로 이어졌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시민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국회가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외치기까지 불과 2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이번 탄핵 운동은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자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던 2016~2017년 촛불집회의 불씨를 이어받아 타올랐습니다. 두 시기 모두 시위대는 다양한 음악 레퍼토리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집회에서 전통적인 민중가요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주최 측은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K-팝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어 2016~2017년 촛불집회에서는 정치 연설과 구호 사이사이에 K-팝이 재생됐고, 그중 하나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습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노래의 가사는 우파 정권으로부터의 집단적 해방을 향한 비전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김지은 활동가는 이러한 변화가 오랜 활동가 사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했습니다. 일부는 K-팝과 응원봉이 투쟁의 ‘전통을 망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지은 활동가는 “운동은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말하며, K-팝이 젊은 세대가 매주 거리로 다시 모이게 하는 흐름을 만들었다면, 그 또한 투쟁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다시 앞으로!
좌: 마루 회원들 / 우: 노래패 ‘이음’. 출처: 마루, 서울여성회
자 저 쓰라린 세월도, 기름밥 눈칫밥의 나날도
자 또다시 일어나
역사에 발맞추어
하나! 둘! 셋!
앞으로! 또다시 앞으로!
– ‘또 다시 앞으로’
2026년 1월 10일 베네수엘라 연대 행동. 출처: 국제전략센터.
APEC 정상회의 기간 트럼프의 방한에 맞서 투쟁했던 한국 사회운동 진영은 다시 트럼프 1년 규탄 국제민중행동을 규합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선언문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에서 최근 일어난 베네수엘라에 대한 폭격, 그리고 2026년 1월 3일 일어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실리아 플로레스 영부인 납치까지 미국의 제국주의 폭력을 규탄합니다(국제민중총회가 제작하여 세계 각지의 베네수엘라 연대 집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포스터를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베네수엘라까지, 민중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투쟁은 계속 이어지며 노래 또한 계속 이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팅스 착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 예술국장
원문출처: When the Revolution Comes, Our Songs Will Be Sung |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