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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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는 활력이 가득 찬 나라였다. 번화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선거 운동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혁명을 외치는 사람들은 인파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내가 느낀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소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회주의를 목청껏 외치는 열정적인 눈빛의 많은 사람들을 보며, 이 나라가 지금까지 이뤄낸 환경에 대한 부러움과 우리가 과연 저런 열정을 가지고 저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16년간의 혁명 기간을 거쳐오며 많은 것이 발전했으나 아직 발전할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그래서 더욱 더 가능성이 느껴지는 나라였다. 베네수엘라의 의료 기관을 방문했을 때, 아직도 의료 인력의 대부분을 쿠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움을 느꼈으나 그것은 곧 만난 쿠바 의료진의 열정과 헌신에 감화되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쿠바의 의사들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헌신하며, 가족 및 지금까지의 생활환경과 동떨어진 외딴 지역이나 그 어떤 치안상의 문제가 존재할지 모르는 곳이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살아온 곳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며,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 이라는 답은 ‘과연 사회주의가 실천될 수 있을까?’ 라는 회의를 품고 있던 나에게 깊은 감명을 가져다주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는 대신 보다 인도주의적이고 인류애적인 사명을 가지고 행동에 임하는 모습은, 내가 보고 있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 하나의 꼬뮨이 형성되기 위해서 그보다 작은 공동체인 여러 공동체 평의회의 대표들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소득이었다. ‘여러 개의 공동체 평의회가 모여서 하나의 꼬뮨을 형성한다’ 라는 책 속의 한 줄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 사이의 살아 있는 갈등과 서로 다른 생각, 그것을 해결해가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가 내가 직접 본 공동체들 속에서 살아 있었고, 책과 다른, 더욱더 큰 감동을 선사했다.

전체적으로 베네수엘라 여행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였다. 어느샌가 사람들에 대해 냉소적이 되어 가던 나에게 베네수엘라는 아직도 협의와 협동의 가능성이 있음을, 사람들이 더 큰 목표를 위해 당장의 작은 이익을 버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새로운 희망을 선사해 주었다.

김민지(인도주의실천협의회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