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다나오 주민 평화 회담에서 평화를 향한 목소리가 울려퍼지다

필리핀인들에게 “약속의 땅”이라고 알려진 민다나오는 이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틀어쥐고 있는 외국 및 현지 엘리트층이 촉발한 격렬한 갈등으로 인해 수천의 필리핀인들의 피로 얼룩져 왔다. 민다나오의 세 민족 집단, 이슬람계 필리핀인(모로 족), 토착민(루마드 족), 그리고 크리스천 이민자(이주민)가 이 내전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그러나 이 세 민족 집단을 위한 단체가 있고 이들이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필리핀인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민다나오 주민 평화 운동(MPPM)은 지난 2000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모로 이슬람인 해방전선(MILF)에 대한 “전면전” 정책 하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MPPM에는 150명의 회원과 파트너 풀뿌리 단체들이 활동 중이며, 이들은 지난 세기 동안 민다나오 하늘 아래 살아온 이 세 민족 집단의 공동 투쟁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2016년 12월 14~18일간, 민다나오 주민 평화 행진과 8차 민다나오 주민 평화 회담에 참여하였다. 세 민족 집단의 대표들과 함께 걸으며 그들의 역사 및 세계관, 그리고 평화를 위해 진행 중인 일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민다나오 주민 평화 회담은 모로 족, 루마드 족, 이주민에 이르는 민중의 정의에 기반한 평화를 추구하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논의와 연대, 실천의 장이 되었다.

같이 한걸음_필리핀연대 통신원 메르시L. 앙헬레스가 젊은 민다나오 주민들과 코타바토 시에서 미사얖, 북 코타바토까지 총 54 km에 이르는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이곳은 8차 민다나오 주민 평화 회담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민다나오 주민 평화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것에서 이들 세 민족 집단의 풀뿌리 단체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민다나오에도 평화와 화합이 깃들 수 있음을 보았다.

민다나오에서의 평화는 요원한 것

60여 명에 이르는 모로 병사들이 살해된 1968년 자비다 학살과 마르코스 정부가 “기독교인”이자 비사야 족[ref] 비사야 지역은 민다나오 지역 외부에 있는, 필리핀에서 3번째로 큰 지역이다.[/ref]으로 밝혀진 준군사조직을 놓아준 것이 필리핀 민주공화국 정부(GRP)[ref] 마르코스는 1972년의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모로 반란을 이용하였다.[/ref]에 반대하는 모로국제해방전선(MNLF)의 설립을 촉발했다. 1976년, GRP와 MNLF는 민다나오 일부 지방의 자치권, 이른바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ARMM)를 허용하라는 MNLF의 요구에 동의하는 트리폴리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ARMM 내 지역은 여전히 가장 빈곤했고, ARMM 정부는 부패와 운영 부실로 고발당했다. 반면, ARMM 정부는 필리핀 정부가 트리폴리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MNLF가 GRP[ref] MILF의 지도자들은 ARMM의 설립에 반대했고, 당시 필리핀에서 분리 독립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평화회담에서, MILF는 분리 독립을 철회하고, 대신 BAR을 설립하는 데 동의했다.[/ref]와의 평화 협정에 착수한 후,,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은 MNLF로부터 분리되었다. 베닝요 아키노3세 전 대통령은 MILF와의 평화협정 협상에 나서고, 서명했지만, 임기 중에 국회에서 방사모로 자치구(BAR)를 설립하는 방사모로 기초법(BBL)을 통과시키지는 못했다. MNLF와 루마드 족은 GRP와 MILF의 평화 논의에 그들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MNLF와 루마드 족 모두 이 평화회담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루마드 부족에는 30개 정도의 부족이 있는데, 이들은 민다나오에 “태곳적부터” 살아온 첫 주민들로서 15세기에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있었던 사람들이다. 테두라이 족나 람바니앙 족과 같은 일부 루마드 부족은 MILF가 소유권을 요구한 지역에 살고 있고, 그들 역시 새로 구성될 방사모로 자치구(BAR) 내에서의 자결권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평화 회담을 지속하고 있고, 새로 구성되고 있는 방사모로 인수위원회에 MNLF와 루마드 족 대표의 참여를 약속했다. 하지만, 민다나오의 평화는 아직 요원하다. 2016년 9월 2일, 다바오의 혼잡한 광장에서 폭탄이 터져14명이 사망했고 6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폭탄 테러 위협은 일리간 시, 마닐라, 기타 도심 및 전략 도시에도 퍼지고 있다. 범인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지만, 용의자는 많다. MILF에서 떨어져 나온 반군 민족 집단[ref] 2014년 평화 협정 체결 후, GRP와 MILF는 휴전 상태이다.[/ref]과, 납치와 성당같은 공공장소의 폭파 등을 통해 폭력의 씨앗을 뿌리는 아부 사야프 같은 테러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리핀 공산당(CPP)의 군사 조직인신인민군(NPA)은 모로가 거주하지 않는 일부 지역에 군사 전선을 두고 있다. 루마드 부족 일부는 NPA가 루마드 부족 원로의 허락 없이 대대로 전해진 그들 영역에 침입한 것을 이유로 기소하기도 했다. 또한,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비폭력주의를 유지하고자 했던 바람과는 반대로, 무기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NPA와 군대도 기소하였다.

8차 민다나오 주민 평화 회담

민다나오 전역의 루마드 족, 모로 족, 그리고 이주민 민족 집단에서 온 360명의 대표단이 평화적이고 공정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회담에 참여하였다. 필리핀 전역 및 다른 나라의 평화와 인권 지지자들 또한 세 민족 집단의 활동과 투쟁에 연대를 표하기 위해 회담에 참가했다.

마노보 족[ref] 마노보 족은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민다나오의 30개 루마드 부족 중 하나이다.[/ref] 지도자인 로데리오 “야츠” 암바간[ref] 로데리오는 농학자이자, 이 행사를 주최하고 MPPM이 시작된 1999년부터 단체의 조직을 도운 동부기독대학 (SCC)의 연구부 실장이기도 하다.[/ref]이 회담의 목적을 언급하며 회담의 시작을 알렸다. 회담의 목적은 현 상황에서 세 민족 집단의 참가자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는 것, 전체 참가자들이 평화와 인권을 위한 지역 단위의 투쟁과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개인 · 공동체 · 단체 수준에서의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필1루마드 족 지도자이자 대학 교수, 그리고 민다나오 주민 평화 운동의 회장인 로데리오 “야츠” 암바간이 8차 민다나오 주민 평화 회담에서 개막연설을 하고 있다.

MPPS는 2000년부터 2년 간격으로 열렸다. 2010년부터 이는 3년마다 열리는 평화와 인권을 옹호하는 집회가 되었다. 매 회담마다 그 시기에 필리핀 전국, 특히 민다나오에 만연한 상황과 전개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역사적인 2016년 MPPS에는 대통령 평화협상 자문관실(OPAPP) 뿐만 아니라 필리핀 민주공화국 정부도 참여하고 있는 평화 협상 패널의 다양한 혁명 단체로부터 연사들을 초청했다. 민다나오 주립대학교 소속의 학자는 대통령 두테르테가 필리핀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연방제에 대해 토론했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호세 루이스 마르틴 가스콘 인권위원회 의장은 회담 대표단을 대상으로 두테르테 정부 하의 "마약과의 전쟁" 및 사법 외 살인과 민다나오와 필리핀 전역에서 한창 뜨거운 논의가 진행중인 이슈에 대해 연설하였다.

이번 해의 주제별 워크샵에서는 세 민족 집단의 다양한 이슈와 문제(기후변화, 두테르테 정권 하의 청년들에게 닥친 문제점 및 도전과 기회, 두테르테 정권 하의 여성 문제, 이민, 식량 주권의 대안으로서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아시아의 군국주의와 이것이 필리핀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제고하겠다는 MPPM의 지도자와 회원들의 목표가 잘 드러났다.

회담 내내, 참가자들은 민다나오에 평화를 가져오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주제(모로와 루마드의 자결권 강화, 정의와 인권, 생태적으로 안전한 이니셔티브를 통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민족 집단의 대표는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의 삶과 경험, 그리고 MPPM과 진행한 사업들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가에 대해 생생히 증언하였다.

필2‘아시아의 군국주의와 이것이 필리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워크샵’ 참가자들이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일본인들의 반핵 캠페인과의 연대를 보여주었다.

세 민족 집단의 목소리

회담에서 내가 만난 루마드 족의 지도자들은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지난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로날도 “조조” 암바간 마노보 족 토착민 정치체제 사무총장은 부족의 기원과 대지와 자연을 존중하는 그들의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지는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대지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린 단지 대지의 시종일 뿐입니다.”

로날도에 따르면, 마노보 족은 평화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말로만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실천합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었기 때문에 도둑도 없었다. 집 밖의 길에는 그곳을 지나가는 굶주린 외지인이 집주인이 없을 때에도 먹을 수 있도록 사탕수수를 심어 놓았다.

마노보 족과 다른 루마드 부족은 루손 지역에서 온 이주민을 환영했다. 대지가 생명을 준다고 믿었고, 다른 사람을 농업에서 배제하는 것은 살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식민지 개척자와 필리핀 정부가 군주특권 독트린(Regalian doctrine)[ref]이 제도 하에서는 스페인 국왕이나 그 후계자, 미 식민지 정부, 그리고 이후에는 필리핀 정부로부터 토지에 대한 사적 권리를 교부 받거나 그러한 권리를 표시 또는 암시한 근거가 있어야 했다.  루마드 족과 모로 족은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땅은 국가 소유의 공지가 되었다.[/ref]을 신봉하고, 전통적인 토지 배분 체계를 무효화시켰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1913년 이래로, 루마드 족은 예전부터 살던 땅에서 쫓겨나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마드 족의 관습법과 원주민 사회의 사법 시스템이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지역 통치에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그들의 문화는 그들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져 갔고, 곧 소수민족이 되었다.

루마드 족이 선대로부터 내려온 영토와 인간으로서의 자결권을 인정받기 위해 분투해 왔기에, MPPM은 루마드 족 지도자들의 역량을 강화하여 필리핀 정부와 협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회담의 개막을 알렸던 로데리오 암바간은 카타황 루마드(루마드 사람들)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루마드 족 지도자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공유하였다. “토착 부족의 지도자로서, 우리는 계속해서 경계하고, 성찰하며, 활동해야 합니다. 우리의 중요한 적은 바로 저 잠들지 않는 사회구조입니다. 이 사회구조는 인간으로서의 우리들의 집단적 존엄성, 정체성, 안녕을 파괴하는 불공정한 통치 시스템, 정책, 각종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것입니다.” 또한, 로데리오는 루마드 족을 위한 일련의 실천도 제시했다. “검증되고 효과적인 방어 수단 중 하나는 우리의 의지와 자결권을 한 단계 더 진전시킬 수 있는 자치권과 토착 정치구조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MPPM 카타황 모로의 회장이자 MPPM의 부의장인 하바스 카멘단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70년대에 소년이었던 그는 일라가(마르코스 정부가 결성한 기독교 신자로 구성된 준군사조직)가 논에서 쌀을 수확중이던 모로 족 사람들을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2년 후, 그는 100명의 모로 족 피난민이 학살당한 코타바토의 한 마을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나는 도망쳐 나왔지만, 트라우마를 입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죠. 루마반 오 마파타이 – 싸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입니다. 모로 족은 스스로를 보호할 군대가 없기에 속수무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MNLF에 동참했고, 5년 동안 방사모로 군에서 전투요원으로 복무했습니다. 제가 2010년에 MPPM에 가입했을 때, 죽거나 죽이지 않고 싸우는 방법, 전쟁 대신 평화와 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카타황 이주민의 예나 토레스도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2000년, 예나는 민다나오 주민 평화 운동의 조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예나는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자결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던 모로 족에 대한 “전면전”을 펼침에 따라 민다나오의 일부 지역에서 내전이 격화했던 때를 떠올렸다. MPPM은 정부에 전쟁을 멈출 것과 인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 세 민족 집단을 한 자리에 모았다. 또한, 전쟁을 피해 삶의 터전을 떠난 수 만 명의 피난민에게 구호물자와 사회복귀를 위한 도움을 제공했다. 다른 MPPM 회원과 마찬가지로, 예나는 역사적으로 세 부족을 대상으로 자행된 부당함을 해소하여 민다나오 지역에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글: 메르시 리아리나스-앙헬레스(해외 통신원, ISC)

번역: 이주희(번역팀, ISC)

출처:

Proceedings of the 8th Mindanao Peoples’ Peace Summit, held on December 15-18, 2016 in SCC, Midsayap, North Cotabato, Philippines

Personal interviews with Ronaldo Ambangan, Rodelio Ambangan, Habbas Camendan and Yennah Torres conducted between December 15, 2016 – January 22, 2017.

Our Call for Full Inclusion: A Collection of Articles on Peace, Indigenous People’s Rights, and the Bangsamoro Basic Law, published by Loyukan, Quezon City, Philippines, August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