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이해하기 연재기사 1] APEC은 무엇인가?

뉴스를 보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역내 경제 정책을 논의하는 정책 포럼보다는 축제처럼 다룬다. 정부와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로 대표되는 기업계 간의 고위급 회의가 이미 열렸으며 두 차례의 고위관리회의도 열렸지만, 언론은 의제와 논의 내용을 알리거나 논쟁을 이끄는 데 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누가 참석할지, 최근 K-팝 스타 지드래곤이 APEC 홍보대사로 임명되었다는 소식, 또는 숙박시설과 인프라가 충분한지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다. 정부 관료, 전문가, 기업이 경주에서 열리는 정상회의(10/30~11/1)까지 지속적으로 만나 논의하는 회의, 대부분 비공개 논의와 결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중심축을 자유화하는 경제 포럼으로서 APEC은 중요하다. 기업이 주도하는 성장을 둘러싼 공동의 기대치, 규범, 가치를 세우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APEC 회의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 신냉전, 다극화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세계의 전환점의 시기에 열린다. 이 모든 것은 기후 위기가 주요한 세계 의제로 급속히 부상하는 속에서 진행된다. APEC 회의에서 이러한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려 하겠지만, 시민은 이러한 논의에 참여하거나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한국 시민 사회는 APEC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연대행동 조직위원회를 준비중이다. 이 조직위원회는 국제전략센터가 주도해서 준비중이며 APEC의 배경, 동향, 주요 주체들도 연구하고 있다. APEC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 APEC 출범, 현재 국제적 맥락, APEC의 기업 중심 접근 방식과 대비되는 인간 중심 대안을 알아보는 기사 연재를 시작한다.  

APEC 한눈에 알아보기

APEC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1개 경제체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국을 ‘경제체’로 부르는 이유는 홍콩과 대만을 포함하기 위해 중국과 타협한 결과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유럽연합(EU)처럼 폐쇄적 지역주의와 달리, APEC은 회원국에 우대 관세 혜택 대신 더 큰 세계화 노력과 조화를 이루는 개방적 지역주의를 추구한다. APEC 정책은 일방적(경제체가 실행 시기와 방법을 결정)이고, 자발적(경제체가 참여를 선택)이며, 만장일치 방식으로 결정된다. 결정사항 이행에 구속력이 없음에도, APEC은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자유 무역을 세우려 하기때문에 중요하다. APEC은 전 세계 인구의 40%와 GDP의 6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APEC의 정책은 다국적 기업의 무역과 글로벌 가치사슬을 촉진한다. 이러한 정책은 규제를 완화해 사회가 경제를 민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한다. 이는 APEC의 비공개 논의와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가 기업 이익을 대표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협상 과정에 반영된다. 반면, 농민, 노동자, 소비자, 환경주의자 등 광범위한 공공의 이익을 대표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접근 권한이 없다. 

APEC 출범

어떤 기구의 출범과 발전 과정에 참여한 주체와 배경을 이해하면 그 기구의 역할과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1960년대 다국적 기업이 정부와 협력해 APEC이 탄생한 배경에서도 마찬가지다. 표면상으로는 호주가 APEC 출범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실제로는 역내 일본에 대한 과거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적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뒤에서 주도적으로 지역 통합을 이끌었다. 1960년대 일본은 아시아 최대 경제국이자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일본이 지역 리더로 부상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이는 미국이 일본을 아시아의 경제 리더로 육성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벽으로 삼으려 했던 계획과 맞물려 있었다. 일본의 초기 동력은 1950년대와 60년대 유럽경제공동체와 미국과 캐나다의 자유무역협정(후에 NAFTA로 확장)에서 나타난 지역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강화되어 APEC 창설로 이어졌다. 

일본은 아시아 경제 통합을 '비행하는 기러기 이론'을 통해 추진했다. 즉, 대장 기러기인 일본에서 섬유와 같은 특정 산업이 발전하면, 한국과 대만처럼 다음 기러기에게 이 산업을 넘겨주며, 이들은 다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 같은 다음 기러기에게 넘겨주는 방식이다. 실질적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역내 글로벌 가치사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APEC 발전 경로

1968년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 of Asia-Pacific, FTAAP)를 제안하면서 다국적기업, 전문가,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지역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1980년에 태평양 경제협력위원회(Pacific Economic Cooperation Council, PECC)의 연례 비공식 회의로 발전했다. 지역 통합에 대한 열망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인한 일본 엔화 강세로 역내 저임금 노동력 확보가 필요해진 일본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의 해외 직접 투자액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체 해외직접투자액을 다 합친 것과 같았다. 1989년 PECC의 비공식 정부 참여는 APEC 각료회의 설립으로 공식화되었다. 현재 PECC는 두 번째 외교 채널로 남아 있다. 1993년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FTAAP를 추진하기 위해 연례 정상회의를 제안하며 APEC 각료회의를 한 단계 격상시켰다. 

1994년 보고르 목표에서 2010년까지 산업화 국가의 관세를 폐지하고 2020년까지 산업화 중인 국가의 관세를 폐지할 것을 설정해 FTAAP를 만들고자 했다. 1995년 오사카 행동계획은 경계하는 ASEAN과 자국의 농업 보호에 대한 우려를 가진 일본의 신중함 속에서 FTAAP 실현을 위한 자발적이고 합의 중심의 접근 방식을 제도화했다. FTAAP를 실현하지 못하자 2020년 푸트라자야 비전에서 2040년까지 FTAAP 달성을 목표로 재설정했다.

APEC 현재

일본이 APEC의 주요한 주체이지만, 미국은 항상 APEC의 발전경로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부상으로 중국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라는 비전을 APEC 회원국과 미국 중심의 법적 틀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발전시켰다. 2017년 트럼프가 TPP에서 탈퇴한 후 바이든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로 진화시켰으며, 현재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APEC을 주도하는 역할에 충실한 일본은 TPP를 구제하기 위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추진했다. 반면 중국 중심의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중국의 경제 구조를 반영해 정부의 경제 개입을 더 허용한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접근 방식은 APEC의 목표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 무역 지대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두 접근 방식 모두 현재 세계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전쟁 위기를 해결하는 길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2025 APEC 슬로건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 : 연결, 혁신, 번영”에는 필요한 단어가 모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지구와 인류의 삶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다국적기업 중심의 폐쇄적이고 투명하지 않은 APEC 회의는 용납할 수 없다. 결국, APEC의 “경제”는 단순히 기업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노동자, 농민, 소비자, 모든 사람들이 경제를 구성한다. 따라서  시민이 이러한 논의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제전략센타가 APEC 정상회의에 대응해 국제연대행동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이를 위해 먼저 APEC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