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이해하기 2] 글로벌 가치 사슬의 탄생

글: 매튜 필립스, 로리 아인스워스(콘텐츠팀,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APEC이란 무엇인가”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역사와 현재의 정치적 상황, 향후 전망을 다뤄보고자 한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려면 글로벌 가치 사슬을 키워낸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신자유주의가 현재 트럼프의 관세 갈취라는 백래시를 어떻게 촉발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는 지지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자유시장을 추구하지 않는다. 언제나 국가가 기업과 투자자 대신 개입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반구 열강의 다국적 기업들은 국제통화금융(IMF),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 등을 통해 남반구 국가의 노동자와 자원을 착취하면서 민주적인 관리를 가로막는 한편, 자국 내에서는 2차 세계대전 후에 수립된 사회보장제도를 해체했다.

기업이 글로벌 가치 사슬을 통해 생산 기반을 전 세계로 확산하도록 부추긴 것은 대량 생산의 이윤율이 저하하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원유 가격을 올리며 에너지 비용이 높아졌으며,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제를 폐지함에 따른 고정환율제의 종식으로 시작된 1970년대의 경기 침체였다. 남반구 국가들은 부채로 인해 민족 해방 사업이 좌초되면서 노동력을 싼값에 제공하게 되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1985년 플라자합의에 따라 엔화가 평가절하된 후 일본이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는 역내 가치 사슬을 구축하기 위해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어마어마하게 늘리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베트남전에 따른 미국의 군비 지출로 유발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1979년에 폴 볼커가 금리를 인상할 당시, 그는 제3세계 국가들의 부채를 “재앙 수준”으로 높여버렸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 위기를 제3세계 국가로 떠넘기면서 다국적 기업이 남반구 국가들의 노동 및 소비자 시장을 개방할 수단을 마련해 주었다. IMF와 세계은행이 구제금융과 개발 차관을 대가로 남반구 국가의 경제를 구조조정한 것이다. IMF는 외국인 직접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남반구 국가의 경제를 강제로 개방할 목적으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세계은행은 이들 국가를 “글로벌 가치 사슬”에 통합할 인프라를 만들었다. 게다가 교통과 각종 협업 비용을 줄인 통신, 컴퓨터화, 컨테이너 화물선의 급격한 발전과 같은 기술적, 경제적 요인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조건을 마련했다.

아이폰의 불평등한 이윤 분배

애플의 아이폰은 글로벌 가치 사슬이 어떻게 유례없이 효율적이고 대규모로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면서도 이윤 분배의 불평등을 강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이폰을 조립하는 것은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이지만, 아이폰으로 번 막대한 이윤은 미국 기업인 애플로 돌아가고, 공급업체와 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보상만 주어진다. 이러한 불균형은 지식재산과 브랜드 파워를 활용하여 세계화된 저임금 노동자로부터 최대한의 가치를 뽑아내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핵심 논리를 보여준다. 

제품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 브랜딩, 서비스를 관리하는 것으로 애플은 아이폰4 1대 판매액에서 58.5%의 이윤을 거둬들였다.

그다음으로 이윤이 분배되는 곳은 대만과 한국 등에 위치한 하이테크 부품 제조기업이다. 이러한 기업은 자본 집약적이고 고급 기술을 활용한 생산에 참여하지만, 가져가는 이윤은 애플보다 훨씬 적다. 삼성과 LG는 OLED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칩을 공급하지만, 이들 기업이 벌어들이는 것은 아이폰4 판매 이윤의 14%에 불과하다. 폭스콘이 아이폰 조립을 위해 고용하는 노동자 수는 수만 명에 달하지만, 아이폰4 판매 이윤의 1.8%만 가져간다. 이러한 이윤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는 아이폰을 실제로 만드는 중국 노동자가 있다.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려는 애플의 행위는 생산의 변동성을 공급업체로 떠넘겨 단기간에 생산 요구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를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으로 밀어 넣는다. 아이폰4를 조립한 노동자의 수는 25만 명이다. 중국에서 임금이 상승하고 있음에도, 2023년 기준 폭스콘 노동자의 시급은 3달러 미만이다. 이렇게 중국은 세계 생산의 밑바닥을 지탱하면서도 최종 제품 판매를 통해 가져가는 가치는 가장 작다. 오히려 대부분의 이윤은 애플로 돌아가고, 동아시아 공급업체가 그다음으로 이윤을 가져가며, 생산에서 인건비를 담당하는 중국 노동자에게 가장 마지막으로 이윤이 돌아간다.  

안정적인 투자 환경과 쿠데타의 연관성

글로벌 가치 사슬은 단순히 무역 협정과 은행 대출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과 지정학적 패권을 위해 “안정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 제국주의가 개입하여 수많은 독재 정권의 뒤를 받쳐준 결과물이다. 라틴아메리카부터 중동,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뒷배로 한 잔혹한 독재자들이 미국 자본을 위해 저임금, 규제 완화, 시장 개방 정책을 유지했다.

1965년에 50만 명이 넘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원의 처참한 살해 사건의 이면에는 미국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미국 석유 기업이 인도네시아에서 국유화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일을 모델로 삼은 미국은 1973년에 칠레에서 미국의 구리 산업 관련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피노체트를 지원했다. 

냉전 이후의 이러한 논리는 “투자자 신뢰도”로 변화했다. 미국은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군사 원조로 연간 13억 달러)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실(미국 방위산업체의 무기 매출이 수십억에 달함)을 지원하여 원유 생산의 흐름을 유지하고 노동 운동을 억압했다. 2009년 온두라스 쿠데타(힐러리 클린턴이 지지)는 농기업의 토지 몰수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러한 독재 정권들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공공 자산을 사유화했으며 해외 자본을 위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반대 세력을 잔혹하게 억압했다. 그 결과, 불평등이 만연하게 되었고 부패는 심화하는 동시에 반미 역풍이 불게 되었다(예: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 9.11 비행기 탈취).

오늘날에도 미국은 이집트의 시시와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를 지원하며 “자유 시장”을 내세우면서 민주주의를 대가로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다. 미국이 가져온 “안정성”이란 미국의 지원을 받는 폭군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탈산업화, 노동조합의 약화, 극우의 득세  

미국에서는 글로벌 가치 사슬을 통해 생산 기반이 국내에서 국외로 이전되면서 1970년대부터 탈산업화가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공장 폐쇄, 생산 기지 이전, 러스트벨트(미국의 중서부 지역과 북동부 지역의 공업 지역)와 같은 산업 허브에서 나타나는 제조업 일자리 감소 등이 나타나면서 미국의 정치와 경제가 변화했다. 이러한 경제적 격변은 노동자의 생활 임금과 복지를 지켰던 노동조합의 탄압으로 심화했다.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자, 경제적 타격을 완화해 주는 사회안전망도 사라졌다. 그로 인한 절망은 극우 세력이 성장할 비옥한 토대를 마련했다. 극우 세력은 경제적 불안을 무기로 이민자와 소수 민족을 희생양으로 삼는 반면, 기업의 탐욕과 이를 내버려둔 양당 정치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트럼프 같은 정치인들은 환멸을 느낀 노동자 계급이 민족주의적이고 반노동적인 의제를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제는 억만장자의 배만 불리고 부흥과 관련해서는 헛된 약속만 제시할 뿐이다.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창출되는 막대한 부의 대부분을 북반구 국가들이 가져가고, 남반구 국가들은 쥐꼬리만큼 받았다. 그렇지만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되듯, 그동안 쌓인 부를 기반으로 이제 남반구 국가들이 세계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다극화 세계에서 강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브릭스(BRICS) 등은 미국의 단극 헤게모니에 맞서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 질서의 다극화를 의미하며, 미국은 이를 글로벌 패권의 위협으로 인식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다극화 질서의 등장과 신냉전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