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나다

(노동역사기행 참가자와 평화시장 노동자 신순애, 전태일 동상 앞)

(노동역사기행 참가자와 평화시장 노동자 신순애, 전태일 동상 앞)

글: 케일리 클레이바
번역: 홍정희(번역팀, ISC)

최근에 나는 국제전략센터의 노동역사기행에 참여하여 운 좋게도 살아있는 역사를 통해 한국과 서울에 대해 배우고 잘 알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오기 전에 지방 소도시에서 생활했던 탓에 벌집같이 몰려 있는 회색 고층건물이 즐비한 서울에 애착을 갖기가 어려웠다. 노동역사기행에 참가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더 나은 사회를 이루고자 전념하는 활동가들을 만났다. 그러한 활동가들의 성취와 투쟁에 대해 배운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바꾸어 놓았다.

추운 아침에 기행을 시작한 우리는 경복궁역 근처에 있는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우리는 비닐 장막 사이로 작게 난 입구를 통해 큰 히터로 데워진 천막에 들어가 신발을 벗고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둘러앉았다. 한국어로 된 리벳공 로지의 구호가 담긴 스티커가 빛 바랜 회색 접이식 의자 뒤에 붙어있었다. 의자 너머에는 야영에 필수적인 활력소인 다양한 간식이 초콜릿 상자에 아몬드가, 커피통에는 티백이 들어가 있는 등 어울리지 않는 용기에 담겨 있었다. 전교조에 따르면, 청와대 앞에서 전교조의 공식적, 합법적 지위 인정(법외노조 통보 철회)을 요구하며 농성한지 167일이 되었다고 한다. 1989년 군사정권 하에서 창립한 전교조는 교육민주화 실현, 사회여건 개선, 노동권 보장을 주장해왔다. 한국이 OECD에 가입하기 위해 국제 노동기준을 도입한 후, 1999년에 마침내 전교조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에서 해직교사를 배제할 것을 강요하며 탄압을 일삼더니 2013년에는 전교조를 불법화했다.

잘 다듬어진 흰 턱수염 뒤의 미소와 유쾌함이 매력인 중년의 조 위원장은 교직에서 해직된 이후 전교조 합법화에 헌신하고 있다. 그가 지리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은 내가 경험한 한국 교육 시스템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선생으로서 한국 학생들이 지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학생들이 세계 다른 나라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 아직도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도 세계에 관한 지식보다 시험 점수만을 우선시하는 한국 교육에서는 지리학이 필수 지식이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탄압으로 수백 명의 교사가 해직되었을 때 학생들이 빼앗긴 것이 자신의 선생님 외에 또 무엇이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위원장의 웃는 얼굴에서 슬프게 학생과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됐다. 단식 투쟁에 대해 알고 나자 작은 안경테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 평범한 삼촌 같지만은 않았다.

조 위원장으로부터 한국 교사들의 투쟁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육 불평등의 정치적, 법적, 사회문화적 측면에 나 또한 관계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방과후 영어학원 교사로 일하는 것이 나를 한국 학생들이 처한 초경쟁 환경을 부추기는 시장의 일부로 만든 것이다. 조 위원장은 학원 강사들로부터 노동문제에 관한 연대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해 나를 놀라게 했다. 초과근무 급여 미지급, 주택 보증금 미지급, 의료 보험문제, 성희롱 및 인종차별은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교사들이 직면한 공통적인 문제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 대개는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의 복지보다는 교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교조와의 간담회를 통해 한국 교육에서의 나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실제로 내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나의 입장과 우려를 어떻게 동시에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한국 노동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인 신순애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느슨한 흡연과 위생 관련 규제로 인해 켜켜이 쌓인 세월의 향기를 품고 있는 평화시장 2층에 위치한 다방을 방문했다. 이제 60대를 바라보는 어르신은 13살의 나이에 피복공장에서 시다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생긴 청계피복노동조합에 가입해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가 앉아 있던 공간은 마치 어르신이 이야기하려는 시대로 되돌아 간 듯 느껴졌다. 다방 뒤쪽에 앉아있는 여자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다방을 이용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신순애 어르신의 의상을 보고 곧바로 전형적인 귀여운 한국 할머니 스타일, 즉 진한 보라색 셔츠 위에 다운 조끼를 입고 꽃무늬 스카프로 멋을 냈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어르신은 중간중간 때때로 손짓을 하며 강조하시기도 했는데, 힘찬 손가락까지 이어진 힘줄과 혈관이 그녀가 이야기해주는 기억을 감싸는 듯했다. 나는 의류라는 매개를 통해 여러 면에서 어르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르신이 이야기를 하실 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던 그 눈길을 잊을 수가 없다. 노조에서 운영하는 초등 교육과정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름이 아닌 재봉틀 번호로만 불렸다고 했을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재한 이 평화시장은 수북이 쌓여있는 옷 사이로 상인들만으로도 이미 북적댔다. 이 모습을 보며 그 당시에는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비좁은 다락방에 작은 간이의자와 재봉틀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할 뿐이었다.

기행 전에 명절에 평화시장에 갔지만 문을 열지 않아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그때 시장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서 아무 생각 없이 전태일 동상을 지나쳤다. 생선구이 골목도, 기행에서 신순애 어르신이 어떻게 노동자들이 각종 섬유와 봉제 제품을 등에 지고 옮겼는지를 설명하면서 보여주셨던 지게도 무심히 지나쳤다. 그 지게는 옆에 앉아 있던 자신의 주인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기행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어르신이 원래는 전라북도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르신이 어렸을 때는 도시와 시골이 얼마나 달랐을지 상상해 보았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신순애 어르신은 아직도 재봉사로 일하는 친구가 그녀가 착용한 꽃무늬 스카프를 만들어 주었다고 하셨다. 스카프를 풀어서 강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솔기를 정성스럽게 어루만지며 보여주셔서 우리의 감탄을 자아냈다. 어르신은 50대가 되면서 석사 학위 취득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셨고, 어린 노동 운동가로서의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하셨다.

우리 일행은 구로산업단지에서 노동역사기행을 마쳤다. 구로노동자생활체험관을 방문했는데, 2층에서는 화질이 고르지 못한 비디오가 상영되었고, 벽면에는 한국 노동의 역사가 시간 순서대로 크고 작은 사건과 인물들과 함께 설명되어 있었다. 반세기 전 정부의 선전선동 음악을 배경으로 여성 노동자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자막에는 수천 명을 고용한 성공적인 산업발전 시기 대한 장밋빛사례가 소개되었다. 영상에는 인터뷰는 없었고, 유니폼을 입은 노동자들이 머리를 숙인 채 일하는 모습만 담겨 있었다. 1층에서는 당시 여성 공장 노동자들의 주거 공간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작은 방에 두세 명의 노동자가 함께 살았으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고등 교육을 마치고자 했다. 흠집 없는 벽지와 긁힘 없는 마루에 "보존"이라는 말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외국인 영어 교사들한테 제공되는 큰 독채조차도 흠집 없고 곰팡이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쭈그려 앉아 있는 형태의 석고상도 그 당시 삶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답을 줄 수는 없었다. 공장 노동자의 역사를 담은 사진이 있는 작은 전시실이 정갈하게 꾸며진 주거 공간보다 그때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전했다.

1985년 구로동맹 파업에 참가해 유니폼을 입고 구부정한 채 주먹을 반쯤 치켜든 자연스러운 얼굴 표정의 여성 노동자 두 명 의 사진이 내가 놓친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그들의 룸메이트에 관한 수다를 엿듣고 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느끼고, 어깨의 피로감 또한 느낄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의아한 시선을 던지며, 마치 "여기 있는 장밋빛 노동의 역사를 정말 믿는 건 아니지?"라고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았다. 체험관 옆에 조성된 옛날식 구멍가게는 쾌적한 나무와 유리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선반에서 옛날 놀이 도구를 꺼내 한 판 재미있게 즐겼다. 나는 사진 속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놀이를 했을지 궁금해졌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역사와 운동현장 답사를 통해 활동가들과의 만남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활동가를 직접 만나는 것이야말로 여러 사실과 숫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진짜 역사를 알게 된다. 이번 기행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그들의 시선은 내가 이러한 대의에 기여하는지 아니면 방해하는 존재인지를 묻게 만들었다. 내가 가진 특권을 인식함으로써 나는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나는 어린 학생들과 일하는 특별한 영광을 누리고 있고, 이 학생들에게 작은 변화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기회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