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전태일이다!" 한국 노동자의 투쟁은 계속된다

글쓴이: 이재오(번역팀,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장, ISC)

구름이 낀 11월 13일 오후, 한 청년이 한 손에는 노동 법전을 들고 거리에 섰다. 청년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센 불길이 그의 몸을 잠식했다. 정권이 노동 운동을 탄압하는 상황에서, 이 청년은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채 비인간적인 착취에 맞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고 외쳤다.

이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50여년이 지난 2021년 11월 13일 오후도 그날처럼 구름이 낀 날씨였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대기를 갈랐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추모하러 가지 못하도록 전태일의 분신 장소를 차단했다. 거리, 지하철역, 광장에는 바리케이드를 쳐 집회 참가자가 모이는 것을 차단했다. 그럼에도 만여 명의 노동자가 전국에서 모여 전태일의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다. 모든 참석자가 마스크를 착용했다. 백신 접종이 진행되고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일상이다. 정부는 스포츠 행사와 음악 공연 등을 허용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를 완화했지만, 서울시는 서울 시내 곳곳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집회를 하겠다고 한 노동계의 요청을 깡그리 무시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수많은 노동자 대회 참석자를 한 곳에 몰아넣었다.

여러 제약이 있었지만, 노동자 대회 참석자는 방역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당당하게 대회에 임했다. 이전에도 어려운 조건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집회를 진행했던 경험이 있었고, 이번 대회도 그렇게 치를 것이었다.

참여한 각 노동조합, 정당, 지역단체의 수십, 수백의 깃발과 현수막이 찬바람에 나부꼈다. 한국의 가장 큰 민주노조인 민주노총이 선두에 섰다.

대회가 시작되고 노동 운동 열사와 감옥에 수감된 동지를 기리는 묵념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한국 진보 운동의 대표적인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한목소리로 불렀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노래가 끝난 후 참석자 전원이 줄을 맞춰 아스팔트 위에 앉았다. 대열의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서 맨 끝에서는 대형 스피커에서 무슨 소리가 흘러나오는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몇 가지 구호는 명확하게 들렸다.

“우리가 전태일이다!”

“불평등 세상을 바꾸자!”

구호를 외칠 때마다 노동자들은 주먹을 높이 치켜들고 깃발과 피켓을 흔들었다. 

우리는 파란색과 흰색으로 단순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의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함께노동”이라는 깃발을 들고 있는 참석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함께노동 오상택 준비위원장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한 오 준비위원장은 함께노동이 노동조합 활동가를 대상으로 정치적 의식을 제고하고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이번 노동자 대회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물었다. 오 준비위원장은 노동자가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타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는커녕 노동자의 목소리와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총파업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하기까지 했다.

오 준비위원장은 “올해 노동자 대회에서는 노동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는 대부분 중년 여성으로 구성된 마트 노조가 자리했다. 이들이 입은 노란색 조끼 위에는 해고를 중단하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라는 요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스포츠팀을 응원하듯이 큰 소리로 막대 풍선을 두드렸다.

어느 정도 소리가 잦아들자 오 준비위원장은 올해 노동자 대회의 주요 구호가 “불평등 타파”와 “사회 대전환”이라고 말했다. 또한 “공공 부문의 확대를 통해 전체 사회를 광범위하게 다 바꿔서 민중을 위한 사회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노동자 대회에서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즉각 석방과 노동 운동 탄압 중단을 정부에 요구했다.

2016년 촛불 혁명으로 부패한 박근혜 정권이 탄핵당한 이후 한국 노동자 계급은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다. 비정규직을 없애고 불평등을 줄이며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노조 활동 권리를 보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의 공약은 그저 표를 얻기 위한 공허한 약속에 불과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끊임없이 지배 계급, 부자, 대기업의 편에 섰다.

우리가 있던 곳 뒤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트럭과 버스가 도로를 막은 차 벽 뒤에 서 있었다. 수백 명의 경찰이 촘촘히 대열을 만들고 시위대를 둘러싼 채로 점점 거리를 좁혀 왔다. 경찰 차량의 스피커에서는 해산하지 않으면 기소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러한 위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트 노동자들은 전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오 준비위원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보면 알겠지만, 경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며 “코로나 확산 방지라는 미명 하에 정부는 노동자의 집회를 반대하고 탄압하기만 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야 하는 이유이다.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전태일은 가는 곳마다 노동자 단체를 만들려고 했고, 투쟁을 함께할 동지를 만들고자 했다. 군사독재 하에서 거의 모든 진보적인 운동이 탄압받았지만, 전태일은 분신하는 그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조직하고 그들과 함께했다.

오 준비위원장은 “전태일의 민중에 대한 사랑, 끊임없는 실천과 조직, 동지와 투쟁에 대한 굳건한 헌신이 전태일 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지난 촛불혁명과 오늘의 노동자 대회를 이끈 민주노총 역시 자랑스럽게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노조인 민주노총에는 백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있지만, 그 수는 한국의 전체 노동 인구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오 준비위원장은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노동조합 활동가 한 명 한 명의 성장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기술과 역량을 확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조합 활동가는 노조의 사회, 역사적 책임과 관련하여 분명한 반자본주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

“조직된 노동자에게서만 힘이 생겨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의 힘을 노동자 정당의 강화에 활용하는 것”이라고 오 준비위원장은 지적했다.

현재 한국에 많은 진보정당이 있지만, 노동 계급 전체를 대변하는 정당은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오 준비위원장은 “맑스가 했던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이 지금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공동체와 네트워크가 단결하고 서로 지지해야 한다. 또한 다른 나라의 투쟁에도 더 관심을 기울이고 지지와 연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포위망을 더 좁혀오자 시위 참가자는 “민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터뷰 중이던 우리도 노래를 함께 따라불렀다.

독재 정권의 저 폭력에 맞서

외세의 수탈에 맞서

역사의 다짐 속에

외치나니 해방이여

오 준비위원장은 일어서서 노래에 맞추어 함께노동 깃발을 흔들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우리가 더 잘해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장담한다”며 “전 세계의 동지들도 우리 투쟁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전 세계 노동 계급에 메시지를 남겼다.

민중의 노래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갔다.

보아라 힘차게

진군하는 신 새벽에

승리의 깃발 춤춘다

몰아쳐라 민중이여

노동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하늘 위로 뻗었다. 하나 된 목소리로 함께 하나의 단어를 외쳤다. 한국 노동 계급에는 일종의 인사이기도 하고, 함성이기도 하며 행동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모든 노동자가 반복해 외친 이 단어는 바로 “투쟁”이다.

우리가 전태일이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