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이 프라샤드 방한 인터뷰

인터뷰: 마이클 맥그라(ISC, 네트워크팀)

번역: 심태은(ISC, 번역팀장)


비자이 프라샤드는 인도의 역사가, 언론인, 편집자이다. 그동안 ⟪갈색의 세계사⟫, ⟪제3세계의 붉은 별⟫, 국제전략센터에서 감수를 진행한 ⟪워싱턴 불렛⟫ 등의 책을 저술했다. 현재 트라이컨티넨탈: 사회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최근 ⟪신냉전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도 국제전략센터에서 감수를 맡았다.

2022년 12월 초에 3일의 일정으로 방한한 비자이는 여러 간담회와 포럼을 통해 신냉전과 전 세계에 미치는 여러 이슈를 이야기했다. 방한 일정 마지막 날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국내외의 진보 세력을 조직하고 성장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들을 수 있었다.


[질문] “내가 진보가 되길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진보가 나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명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그런 문제를 겪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경우에 관해 조언해 주실 말이 있을까요?

[답변] 진보라는 것은 입장입니다. 일종의 전통이기도 하죠. 역사와 전통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몇 가지가 있긴 합니다만,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류 대부분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을 벌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평등과 유대감이라는 개념을 배우고 타인에게 상냥하고 친절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장애물이 계급이기도 하고, 젠더이기도 하죠. ‘좋은 사람’이 되고 ‘못되게 굴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는 동시에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배우거든요. 이런 게 한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 될 능력을 가로막습니다.

진보가 하려는 일은 어찌 보면 그런 가치가 세계에서 제대로 실현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거죠. 이런 가치가 그저 이상으로만 남아서는 안 됩니다. 현실이 되고 사실이 되어야죠.

저는 진보라는 것이 품위에 관한 논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품위는 예의 바른 태도만이 아니라 양질의 [삶의] 조건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두에게 친절해야지. 그런데 노숙자들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모두에게 친절’한 예의 바른 태도도 필요하지만, 양질의 조건도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가 나머지 사회와 동떨어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외계인처럼 굴 때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는 어휘를 쓸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 같은 나라에서 밖에 나가 “모두에게 의료보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가 양질의 주택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가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사람들에게 개별적인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대다수가 “예, 모두가 교육받아야 합니다.”라던가 “예, 모두 의료보험이 있어야죠.”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겁니다. 즉, 진보적인 사상이 사실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문제는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수 세력의 효과적인 선전에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이런 걸 실현하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할 수가 없는 것일 뿐이다. 다른 이니셔티브, 다른 인간 욕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거든요.


[질문] 온라인에서 이론 학습의 필요성을 두고 진보 세력이 다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론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상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보시나요?


[답변]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삶을 살죠. 어떤 사람은 다양한 일을 좀 더 명확하게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공부를 하려 할 겁니다. 예를 들어 ‘덜 착취하고 덜 파괴적이면서도 더 나은 교통 체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의 답을 찾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창밖으로 개인 소유의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른 방식은 없는가?’를 고민하는 겁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이론을 공부해야 합니다. 개인 소유의 자동차가 왜 이렇게 많아졌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건 자동차 회사와 많은 관련이 있죠. 그리고 자동차 회사는 자본주의의 본성과 작동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대중교통만 있다면 대기업이 교통 관련 상품을 만들어 팔지 못했겠죠. 그러니 이는 교통의 상품화입니다. 그러면 교통을 탈상품화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을 알려면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많이 배워야 해요. 공부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할 방법을 배우기 위해 공부한다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론서를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진짜 무엇을 의미할까요? 맑스 저작 등을 읽으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욕구는 왜 생기는 걸까요?  이론은 현실에 대한 백신처럼 주사 한 방으로 체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이란 앞으로 어떻게 투쟁할지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심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죠.


[질문] 개인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무력해질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그냥 불평만 늘어놓을 뿐. 큰 단체 소속도 아니고 수줍음도 많고 이런 일은 잘 못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답변] 기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번역이 될 수도 있고, 연구를 주도할 수도 있죠. 또한 여러 이벤트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이 사회에서 새로운 토론과 담론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겁니다.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빈곤, 기아를 타파하고 한반도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며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사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수십 년간 엄청난 탄압을 가했습니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거센 탄압을 받았죠. 그런 탄압은 사회에 상흔을 남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여하기 싫다. 누가 총을 맞았다더라, 누가 체포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연관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공포야말로 독재가 유지되도록 합니다. 독재가 공식적으로는 끝났지만, 그런 공포는 마음에 남아서 사라지기까지 수 세대가 걸리기도 하죠.

저는 ‘기여한다’는 말을 진보에서 잘못 이해할 때가 많다고 느낍니다. 여러분이 야학에서 여성 노동자를 가르친다고 해 봅시다. 그리고 여러분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여성에 관한 내용을 읽어요. 여러분은 이 여성 노동자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를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전체 운동에 크게 기여한 셈입니다. 어느 시대든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노동 계급에 흥미로운 사실을 가르친 교사가 있습니다. 꼭 맑스주의를 가르치지 않아도 됩니다. 세계사 속 열 명의 영웅을 가르치기만 해도 돼요.

대규모 파업을 조직하는 사람과 노동 계급으로 들어가 이들을 가르치는 사람, 저는 이 둘 간의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질문] 국제전략센터같이 소규모 단체에 해 주실 말씀이 있습니까?


[답변] 당연한 말이지만, 성장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일이에요. 대중노선이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대화에 함께 하도록 만들까를 고민하는 거죠. 그래서 국제전략센터의 이름으로 TV에 출연하고 글을 쓰고, 유명한 사람이 나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모든 운동에서는 누가 운동의 얼굴이 될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해야 해요. 그런 사람을 정해서 이들이 미디어에 등장하고, 글을 쓰게 하는 거죠. 이런 활동을 집단으로 할 수도 있지만, 개별적으로도 홍보해야 합니다. 미디어 시대의 정치에서는 특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포스터를 보고 그냥 찾아오지는 않거든요. 상징적인 인물을 바랍니다. 항상 국제전략센터와 관련된 일을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송출하는 어떤 상징적인 인물을 만든다고 해 봅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카리스마 있고, 말도 재치 있게 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라이브를 보러 올 겁니다. 이렇게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여러분이 있는 줄도 모를 거고, 당연히 성장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서 많은 사람의 눈에 띄도록 해야 합니다. 작은 단체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 단체를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의 한국 정세에 관한 평가를 더 날카롭게 다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한국인과 외국인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대중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정립합니다. 대부분은 화물연대 파업을 이런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화물연대 파업 현장에서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현장의 노동자 두어 명을 인터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인터넷 플랫폼을 활용하여 자체적인 언론을 만드는 일은 한국 정세에 관한 다른 시각, 다른 이론을 알리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그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많은 젊은 사람이 눈을 뜰 수 있을 겁니다. 정세에 관한 가장 정확한 분석을 하려는 일부 진보 세력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성이라는 것은 과대평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을 갖추도록 하세요.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를 이해하면 이러하다’는 정도로 말입니다. 어제 행사에서 김종민 국제전략센터 정책팀장께서 신자유주의는 경제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범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국제 지정학 정세를 설명하는 신냉전이라는 개념이 생겼다고요. 이거면 충분합니다. 사회의 99%가 아직 이런 일반적인 방향성조차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다른 세계 사람들을 위해 진보의 시각을 통역해서 전달해야 합니다.


[질문] 미국 정부가 벌이는 신냉전을 다룬 글과 책이 더 나올 예정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외에 계획하고 계신 책이 있는지요?

[답변] 비동맹 운동에 관한 글(영문)을 이미 게시했습니다. 트라이컨티넨탈 웹사이트(영문)에서 보실 수 있고요. 이 시리즈의 제목은 현대 사회 딜레마에 관한 연구(영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딜레마’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정답이 있다고 암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대화로 초대하죠. 저는 이 책이 정보와 사실을 많이 담은, 대화를 위한 초대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냉전이라는 개념을 주고, 토론의 불씨를 지피는 겁니다. 선전 선동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토론의 장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