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동아시아의 이중 구속: 신냉전 속 모순과 가능성 1부

* 본 기사는 2026년 6월 2일자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의 “East Asia’s Double Bind: Contradictions and Possibilities in the New Cold War”를 번역한 글입니다.


미국 군사력에 대한 의존과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적 통합 사이에 낀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은 신냉전이 동아시아를 재편함에 따라 심화하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2026년 6월 2일
이 도시에에 실린 이미지는 트리컨티넨탈 예술부가 편집한 것으로, 수 세대에 걸쳐 전쟁과 점령에 맞선 역사를 기리는 오키나와 조각가 긴조 미노루의 작품을 조명하고 있다. 긴조는 수십 년 동안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일반적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알려짐) 당시와 그 이후에 자행된 참혹한 폭력과 잔혹한 역사를 조각했다. 긴조는 콘크리트, 석고, 금속을 주재료로 작업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소재는 현재 오키나와에 또 다른 미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쏟아붓고 있는 것과도 같다. 오늘날 신냉전의 최전선이 된 오키나와에서 긴조의 조각 작품은 기억이자 물질적 반박으로 서 있다. 이는 결코 매끈하게 다듬어져 지워지기를 거부하는, 거칠고 무거운 역사이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불법적인 침략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제한으로 보복할 것이란 점은 자명했다. 이란은 지금까지 한 번도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거나 통행을 제한한 적이 없지만, 이란 정부는 도발 시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위치를 자국 방어 전략으로 활용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아시아 국가에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은 상품, 특히 에너지가 이동하는 핵심 통로이자 전략적 병목지점이다. 일본 원유 수입량의 약 90%, 한국 원유 수입량의 약 7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해협의 통행이 조금만 지연되어도 에너지 소비가 많은 동아시아 산업 경제는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경제적 관점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은 일본과 한국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페르시아만의 원유에 의존하는 모든 아시아 국가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아시아 국가는 외교적으로 침묵하거나, 일본과 한국의 경우처럼 공개적으로 미국을 지지했다.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가 자국의 경제적 이해를 등지면서까지 미국 편에 서는 이유는 이들 국가가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 체제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 대규모 미군기지가 계속 주둔함으로써 이들 국가는 미국의 끝나지 않는 전쟁에 속절없이 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한, 한국과 일본은 이란 전쟁 문제에서 미국과 결별할 수 없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겨냥하는 주요 군사적 대상은 이란이 아니라,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인 중국이다. 중국이 동아시아 산업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중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동아시아 전체의 발전 모델을 뒤흔들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의 가장 중요한 군사적 후원국이며, 많은 경우 주요 수출 시장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이들 나라의 경제는 이중 구속에 빠져 있다. 미국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의존에서 쉽게 벗어날 수도 없고, 동시에 '새로운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과의 필수적인 경제 관계를 단절할 수도 없다.

<동아시아의 이중 구속: 신냉전 속 모순과 가능성>에서 우리는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되는 어려운 모순 속에 어떻게 놓여있는지 살펴본다. 동아시아를 집중적으로 보겠지만, 현 정세에서 호주와 인도 같은 국가가 수행하는 역할도 간략히 분석한다. 이 도시에에서는 주로 경제적, 지정학적 모순을 다루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적 동맹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보여줌으로써 이들 사회에서 계급투쟁을 발전시킬 가능성 또한 제시한다.

동아시아와 중국의 역할 

지난 30년 동안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의 무역 패턴과 발전 경로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냉전 시기에는 미국이 이 지역 경제 질서의 중심축이었고, 20세기 후반에는 일본이 그 뒤를 이었다. 오늘날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한 중국은 이들 국가의 경제 전반에 걸쳐 정도는 달라도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각국의 발전 모델과 중국 정부와의 정치적 관계는 서로 다르지만, 네 나라 모두 중국이 제조업 중심지이자 공급망의 핵심축, 최대 시장으로 기능하는 생산 네트워크에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연구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경제적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단일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각국 수출의 약 20~25%를 차지한다. 대만은 중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수출의 30~40%가 중국으로 향한다. 필리핀은 상대적으로 통합 정도가 낮지만, 중국은 여전히 필리핀의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서 수출의 약 15~20%를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동아시아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이 중국 산업의 수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전체 경제 규모와 비교해 보면 중국의 중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중국과의 무역, 특히 대중국 수출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차지한다. 대만의 경우 GDP의 4분의 1이 중국 본토와의 무역과 연관된다. 내수 중심 경제인 일본 역시 GDP의 약 5%가 중국 수출과 연결된다(일본 내 120개의 미군 시설이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포함하여 미국과 관련된 GDP 수준에 상응). 필리핀은 수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GDP의 약 6%가 대중국 수출에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 경제의 활력은 동아시아 전역의 생산, 고용, 투자 수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2011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회원국은 역내 경제 통합을 위한 지역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을 논의했다. 이러한 논의는 결국 2020년 서명하고 2022년 1월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이어졌다. RCEP은 전 세계 인구의 약 30%, 세계 GDP의 약 30%를 포괄한다. 뉴질랜드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경제권을 포함하며, 광업에서 첨단기술 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과 22억 명 규모의 소비시장을 아우른다. RCEP 조인국은 20년에 걸쳐 관세의 92%를 감축하거나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한국, 필리핀은 모두 무역 흐름을 강화하고 중국이 최대 경제 규모를 차지하는 상호 연결된 경제 공간을 제도화하는 RCEP의 조인국이다.

무역의 총량이라는 수치 이면의 생산 구조 역시 이러한 통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최종 소비시장일 뿐만 아니라 중간재의 주요 소비국이자 생산국으로서 역내와 세계 산업 사슬의 핵심 연결점이다. 한국과 일본 기업들은 기계, 자동차 부품, 석유화학 제품,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 부품을 수출하는데, 이러한 제품은 주로 중국에서 조립하거나 가공한 뒤 다시 세계 시장으로 수출한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 역시 중국 제조업과 깊이 얽혀 있는데, 대만에서 생산된 반도체 칩은 중국으로 보내져 완성 전자제품에 탑재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통합된 생산 구조는 산업별 상호 의존성을 만들어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중국 전자제품 제조업 수요에 크게 의존한다. 또한 도요타, 혼다, 닛산, 마쓰다, 고마쓰, 히타치, 미쓰비시 등이 이끄는 일본의 자동차와 기계 산업 역시 중국 소비시장과 중국의 생산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한다.

이러한 무역과 생산 관계를 종합해보면, 통합 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네 국가의 경제 모두 구조적으로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대만과 한국이 가장 높고, 일본과 필리핀은 상대적으로 낮음). 이는 성장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역내 전체로 파급되면 취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군 기지로 만든 화환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일관된 군사 전략을 구축했다. 이른바 ‘거부 전략’은 미국의 역대 국방전략 문서에 공식화되었으며, 특히 엘브리지 A. 콜비가 2021년에 출간한 <거부 전략: 강대국 갈등 시대의 미국 국방>에서 체계적으로 제시되었다. 콜비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로 재직하며 2018년 국방전략 수립을 주도했다. 현재 콜비는 국방부 정책 차관이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을 설계하는 핵심 전략가 가운데 한 명이다. 거부 전략의 핵심은 동아프리카에서 미국 서부 해안까지, 그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포괄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는 인식에 있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대체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달려 있다. 이 전략은 군사적 우위와 동맹국 간 공조를 통한 억지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쿼드(QUAD, 2017), 미국, 영국, 호주의 3자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 2021),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예산 지원과 군사태세를 위한 틀인 태평양억지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 2021),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체제(2023)로 제도화되었다.

미국은 이란을 상대로 한 것과 같은 직접적인 군사 충돌보다, 미국 중심의 동맹 체계를 강화하고 미군기지를 전진 배치해서 중국의 방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전략을 추진한다. 현재 미국은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가르시아에서 괌에 이르기까지 약 270개의 군사시설을 운영한다. 미국 전략의 핵심에는 신뢰할 수 있는 미국의 군사력을 통해 중국의 전략적 선택을 제약하는 동시에 미국 주도의 역내 질서를 유지하고, 중국을 지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계속 활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 구상에서 대만은 핵심적이다. 1979년 1월 1일,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 인정하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도 인정했다. 그러나 1979년 4월 10일, 미국 의회는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만에 무기를 판매해 중국을 자극하고 대만과 직접적인 경제·문화 관계를 유지하는 이중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1950년 이후 미국은 대만에 약 500억 달러 규모의 방위 장비와 군사 서비스를 판매했다. 대만이 중국 본토와 통일할 경우 중국의 태평양 진출 능력이 크게 확대되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 대만의 지위는 단순한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은 대만을 중국 정부를 압박하고 행동을 억제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은 일본에서 필리핀까지 이어지는 호 모양의 섬들로 이루어진 지대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 역할을 하는 제1도련선에서 시작되는 지리적 포위 체계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포위망은 디에고 가르시아, 스리랑카, 그리고 페르시아만 지역 미군기지까지 연결되며 더욱 깊은 ‘포위 종심’을 형성한다. 미국은 제1도련선을 따라 주요 거점과 해상 운송로를 통제하고 중국군의 기동성을 제한하기 위해 군사기지와 기지 접근 협정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이러한 포위 전략은 일본과 한국에 있는 대규모 상설 군사기지뿐 아니라, 군사적인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태평양과 인도양 전역에 분산 배치된 보다 소규모이면서도 유연한 군사 거점도 점점 더 많이 포함한다. 이러한 기지는 감시, 정찰, 미사일 체계와 통합해 상시 감시와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처럼 미국 군사기지 네트워크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체계적인 봉쇄 시스템을 구성한다. 미국은 여러 국가안보 문서에서 이러한 전략을 방어적 억지로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국경을 따라 미군을 배치해 긴장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의 봉쇄와 포위 전략은 지난 20여 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미군 군사력과 군사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구체화했으며, 특히 2020년 이후 그 속도와 강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또한 발리카탄 훈련(필리핀), 말라바르 훈련(호주, 인도, 일본), 탈리스만 세이버 훈련(호주)와 같은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에도 지원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미국은 동맹국 간 군사적 상호운용성을 강화하고, 동맹국들을 단순한 역내 협력국이 아니라 중국 봉쇄 전략의 최전선에 참여하는 군사 파트너로 전환하도록 설계되었다.

미국이 최근 제시한 대표적인 정책 프레임워크 중 하나는 2021년 국방수권법에 따라 설립한 태평양 억지 구상(PDI)이다. PDI에서는 병력 전개, 군사기지 인프라 구축, 미사일 방어체계, 그리고 일본, 한국, 필리핀 등 미국의 동맹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위한 전용 예산의 안정적 확보를 보장한다. 일본에서는 PDI를 통해 미사일 방어체계와 신속 전개 전력이 강화되었다. 한국에서는 연합군사훈련이 확대되었고, 필리핀에서는 미군기지와 감시체계가 현대화되었다. 또한 PDI는 인도태평양 전역에 장거리 정밀 타격 미사일 체계를 통합, 배치하는 기반이 된다. 여기에는 괌과 마리아나 제도의 미군기지, 그리고 2023년 미 정부가 약 6,600만 달러를 배정한 필리핀 바사 공군기지 등에 구축된 공중 및 미사일 방어 능력 확대를 포함한다. PDI는 또한 정보, 감시, 정찰 체계를 구축하고 강화해 역내 군사 활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도록 하고, 정밀 타격으로 알려진 군사 목표를 신속하게 식별하고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전개로 인해 일본, 한국, 필리핀과 같은 국가는 미국의 군사적 공세를 위한 전방 작전 거점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