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사회변화 전략] 라틴아메리카의 민중권력과 정치적 도구

글: 페데리코 푸엔테스 (쇼셜리스트 리뉴얼 저널, 링크스 부 편집장)
번역: 홍정희(번역팀, 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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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권력이 대규모로 상향식 대중의 참여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이론적인 토론에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은 라틴아메리카뿐이다. 여러 곳에서 독재와 신자유주의 정권에 맞선 중요한 봉기 (아랍의 봄), 좌파 정권 출범 (그리스), 대중 권력의 소규모 사업이 (노동자 점령, 농업 협동조합 등)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핑크타이드”로 알려져 있는 시기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풀뿌리 사회운동이나 좌파 정권 수립을 비롯한 참여예산제 실시, 공동체 건설, 노동자관리 산업이 대규모로 이뤄진 곳은 드물다. 민중 권력 실험기 동안, 실질적인 민중 권력 건설 과정에서 사회운동과 정당의 역할과 관계에 관한 전반적인 토론, 때때로 과열된 논쟁이 지속적으로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세력의 선거 패배, 풀뿌리 사회운동과 “핑크타이드” 정부 간의 갈등 등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로 이 논쟁이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불행히도 이 논쟁의 많은 논점에서는 지난 20년 투쟁의 한쪽 면만 보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현재의 불행이 단순히 외세의 간섭이나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부를 약화시키는 소수 "급진적" 좌파 세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일각에서는 정부 자체를 비난하며 국민의 소리를 귀 담아 듣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핑크타이드” 전후로 사회운동과 정당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눈여겨보면 민중 권력과 우리가 오늘날 필요한 정치적 도구의 종류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핑크타이드” 이전

세계와 지역 민중 사이에서 좌파 정부가 만들어낸 전반적인 동조와 연대에 정면으로 부딪히자, 많은 사회운동가는 좌파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사회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인정해야한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그것은 옳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전 지역을 뒤흔든 운동은 신자유주의의 특정 개혁을 뒷걸음치게 하고 우익 정권을 붕괴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대개 소외되었던 정치적 좌파 세력에게 새 지평을 열어주었다.

또한, 이 운동은 아마도 새로운 좌파 정권에게 투표와 거리 집회에서의 지지 그 이상을, 중요한 저항의 사회기반을 주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좌파가 거리 시위와 선거운동에서 외쳤던 “대중 권력” 현실화에 도움이 되었다. 마침내 오랜 투쟁으로 많은 지역 단체와 지역 모임은 후퇴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의 공백을 좌파가 채우면서 작은 정부처럼 서서히 변모해갔다.

좌파 정권이 성공하고자 한다면 우파의 반격을 방어하기 위한 힘을 가져다 줄 사회운동과 협조해야 함을 좌파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좌파의 정치적 사안을 수행하는데 핵심적 역할도 한다. 특히 이 사안이 승계한 국가에서 순조롭게 이룰 수 없을 때 사회운동의 역할을 빛을 발한다. 정치적 도구가 기존 사회운동 형태의 “민중 권력”과 반드시 대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 도구가 권력, 특히 군사 독재자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선거 현상으로 분류해버린 것이 나타나는데 계급투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지만 이 편향된 시각이으로는 사회운동과 그들이 지지한 좌파 정권 사이에 존재하는 역동적 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대개 편향된 시각은 정치적 좌파(정당)와 사회적 좌파(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공통점을 간과하거나 경시한다. 경우에 따라서 사회운동이 새로운 정치적 도구의 조직적 중추를 제공하면서 사회적 좌파가 정당을 창당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 볼리비아 (사회주의운동), 에콰도르 (빠차꾸띠크), 브라질 (노동자당)의 경우에 거리 시위의 한계를 인식하고 기존 좌파 정당에 강한 불신을 품고 있는 사회운동 사이에서 많은 고려 끝에 정당 창당을 결정했다. 사회 운동 진영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을 지배하려고만 하거나 선거 기간 때만 반짝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기존 정당을 믿지 않았다. (하네커 & 푸엔테스 2008, 하네커와 푸엔테스 2013) 이러한 정당은 정치적 도구의 필요성에 대한 사상적 합의를 토대로 함께 해온 간부 소모임의 결과물은 아니다. 여러 사회적 좌파 운동가 대부분이 권력을 쥔 정당이 민중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면 그 요구를 귀담아 들어 줄 대표로 교체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당이 생겼다.

정치적 좌파의 성공을 독립적인 사회적 좌파 결집의 결과로 보는 관점은 대체로 사회의 협동조합주의자들 일부를 대표하는 사회운동을 “민중” 전체로 보는 잘못된 경향이 있다. 좌파의 선거 승리는 사회운동의 결집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훨씬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좌파는 권력과 반(反)신자유주의 사회운동 담론을 활용 할 수 있고 만연해 있는 “정치 혐오” 분위기와 기존 정치기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이용할 수도 있다.

새로운 좌파 정당은 광범위한 반(反)정치적 감정을 동원하고 기존 사회운동 이상의 것을 실현하는 곳에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좌파는 낡은 정치 계급을 비난하며 새로운 정치 형태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유형을 약속하여 승리했다.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선거에서 5 % 이상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볼리비아 페리페 퀴스페의 파차쿠틱원주민운동당(MIP), 아르헨티나의 다양한 좌파 전선). 그리고 좌파 정당이 낡은 정치 계급과 별반 차이 없는 곳에서는 그들에 대한 지지가 무너져 내렸다. (에콰도르 빠차꾸띡, 베네수엘라 급진 운동당)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좌파의 행운은 그에 앞선 사회적 좌파의 운동과 관련있지만 이 현상만으로는 설명할 수는 없다. 사회적 좌파 안에서 정치적 도구의 필요성에 대한 전략적 논의와 사회적 좌파와 정치적 좌파 사이에 존재하는 강한 역동적 관계가 중요했다. 또한 정치인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진저리 치는 사회 대다수 민중과 연대할 수 있는 좌파의 능력이 선거 승리에 필수적이었다.

“핑크타이드” 시기

“핑크타이드” 시기 첫 해 사회적 좌파와 정치적 좌파 간의 관계가 아주 끈끈했다. 새로 선출된 좌파 정권은 그들의 승리가 사회운동 수십 년간의 절정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회적 좌파 운동가가 정권 핵심에 등용되고 의회에 진출했다. 그리고 미주자유무역협정 폐지, 미군기지 철수, 주요 천연 자원 국영화, 제헌의회 구성 등 사회운동의 많은 핵심 요구가 구현되었다. 사회적 좌파와 정치적 좌파는 양 진영이 협력해서 이 모든 진보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부의 선거공약을 일부만 달성한 사례나 사회운동과의 협력이 말에만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좌파와 정치적 좌파가 대개는 협력하였고 사실 베네수엘라에서 쿠데타와 자본 파업, 볼리비아의 도시의 쿠데타 등 우파의 초기 반격에 살아남기 위해서 양 진영은 협력해야 했다.

2008년 9월 ‘핑크타이드’ 첫 십 년이 막이 내리면서 사회운동과 좌파 정당 간의 긴장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빈곤 감소, 문맹률 감소, 의료 확장 등 사회 영역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발전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단, 정치 및 경제 정책이 문제였다. 이러한 분쟁의 핵심은 사회운동, 정치적 도구, 민중 권력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논쟁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좌파 선거 승리의 핵심 요소는 정치 계급을 향해 만연해 있는 분노를 활용하는 능력이다. 일부는 구태의연하고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대의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를 뛰어넘고, 참여적, 주체적, 민중 중심 민주주의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공약이 이뤄졌다. 실현 가능한 사례로 좌파 정당이 주도한 주민참여예산제와 같은 참신한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사회를 실현할 집단적 공간 역할을 할 제헌의회 소집을 약속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무엇이 혹은 누가 민중 권력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상이한 견해로 몇 가지 중요한 논의를 하였다. 예를 들어, 어떻게 제헌의회 대표을 선출할 것인가? 사회운동은 그들이 제헌의회 대표를 직접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좌파 정권이 정당을 포함하는 전통적인 선출방식을 고집하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국가 예산은 어떠한가? 다양한 사회운동이 요구했던 것에 따라 나누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정부가 국민 전체 이익을 더 잘 아우를 수 있는가? 사회운동이 민중의 이익을 가장 잘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반면 좌파 정권은 민중을 대표하는 핵심을 대다수 유권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사례가 민중 권력 논의에 더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전국 규모의 강력한 사회운동이 차베스 선거 전과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없음에도 민중 권력을 일반적으로 가장 잘 실현해 나가고 있는 곳은 베네수엘라이다. 1989년 2월 가장 유명한 까라까소 봉기와 같은 많은 사회적 폭발이 대규모로 분출했지만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수준의 것과 같은 사회운동은 드물었다.

따라서 차베스는 초기에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그를 확실히 지원해주는 군부에 의존해야만 했다. 계급투쟁이 강렬해지자 차베스는 사람을 조직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분산되고 지역화 된 집단과 전국 도처에 있는 빈곤 지역의 사회 집단을 규합할 방법을 모색했다.

이 방향으로 실시된 중요한 첫 단계는 의료 및 교육 위원회와 같은 기존 또는 새롭게 만들어진 지역 단체를 추동해서 다양한 아래로부터의 사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나중에 공동체평의회로 그러고 나서 꼬뮨으로 성장하는데 토대가 되었다.

이웃과 지역사회 개선을 위한 전반적인 계획을 설계하기 위해 다른 위원회 주민과 활동가가 함께 해 분야별 이해관계가 극복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오늘날 어려움과 난관, 기존의 사회운동을 폄하하는 사회적 좌파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수백만 일반 시민을 포함하는 이 운동을 잠재적으로 현존하는 민중 권력 기관이며 대단히 중요한 공동체 국가의 초석으로 간주한다.

볼리비아에는 이와 비슷한 사업이 없다. 기존 사회운동은 민중 권력을 구축하는 매개체이다. 지역 공동체가 매우 잘 조직되어있고 특히 농민 조합이나 지역 위원회 같은 사회운동이 일반적으로 국가가 수행하는 업무를 이미 담당해 온 곳에서는 이것이 어느 정도 말이 된다. 이러한 사회운동이 지방 선거에서 승리한 곳에서, 기존 지방자치단체와 예산은 사회운동 연합의 신중함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원주민 자치에 관한 법률 도입으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통제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 능력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지방의회가 전통적인 토착 관습과 관행에 따라 운영 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지방의회 법령을 위한 국민 투표에서 지방 자치제 주민이 투표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는 잘 이뤄졌지만 지방의회 재원과 지위를 두고 사회운동 내분이 일어나 진정한 민중 권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를 무마시켰다. 더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지방의회 지역은 기존 사회운동을 조직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 정확히는 MAS가 선거에서 승리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었던 곳에서 그렇다.

두 나라 모두 민중 권력을 지역 차원 이상으로 어떻게 구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국가 우선순위와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사회운동 위원회 또는 최고 회의가 소집되었지만 여전히 실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임을 강조했다.

전반적으로, 좌파 정권이 새로운, 더 많은 참여 형태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잘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많은 사회적 좌파는 좌파 정권이 진정한 민중 권력을 구축하기 보다는 낡아빠진 기존 국가에 대한 통제권만 유지하는데 더 혈안 되어있다고 비판한다. 많은 정부 관계자는 선거에서 계속적인 승리가 보여주듯이 협동 조합주의자가 아닌 그들이 국민의 전체적인 뜻과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정책에 관해서 좌파 정권이 성공적인 반(反)신자유주의 / 반(反)자본주의 경제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해 토론해 왔다. 정치적 좌파는 확실한 사회 및 경제 지표로 빈곤이 감소하고 공공 분야가 증가하는 것이 경제 전략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사회운동가는 자본주의와 단절을 제대로 이루저지지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정부는 채굴 산업 수익에 대한 의존도로 똑같이 이전 신자유주의 정부가 걸었던 환경 파괴적인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을 향한 중요한 절차가가 실행되고 있는 확실한 사례가 여러 곳에서 특히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서 나올 수 있다. 이는 좌파가 국가 기관을 장악해서 가능해졌으며 또한 좌파 정부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를 회복하고 시장력을 규제하고자 한다. 라틴아메리카 어디에서도 자본주의와의 단절은 없다. 반대로 어느 좌파 정권도 자본주의와 결렬되었다고 하는 곳은 없다. 자본주의와의 완전한 단절이 현재 국면에서 가능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회적 좌파 일부는 좌파 정권의 경제 전략의 결함 특히, 천연자원 사용과 같은 중요한 국가 문제를 상의 없이 결정하는 정부 경향을 일찍이 지적해왔다. 그러나 국가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신 전국 규모로 결코 재생되지 못할 소규모 사업만을 지적했다. 그들의 경제 정책은 참여 민주주의 개념을 전제로 천연자원을 지역 공동체에 양도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이는 민중권력의 잠재적 국가 또는 지역체계를 강화하기 보다는 결국은 파편적으로 복무하게 될 것이다.

“핑크타이드” 교훈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사회운동, 정당, 민중 권력, 그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최근 경험에서 우리는 많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교훈은 이론 논쟁과 더 중요하게는 생활체험에서 나왔다. 분홍빛 조류가 어찌 되든 상관없이 이 교훈을 무시하면 좌파는 크나큰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이전에 정당이나 정부가 아닌 핑크타이드가 사회운동과 했던 희망 거짓말과 멀어지게 하고 또는 미래는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 결정될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럴싸하지만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전에 사회운동이 단독으로 투쟁만 해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 도구를 만들기로 한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이 결정이 내려진 이유와 이러한 논쟁에서 도출된 교훈과 이 정치적 도구의 다음 궤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논쟁과 교훈을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몇 사람을 언급하고 싶다. 마르따 하네커도 여러 글에서 여럿을 언급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연구하고, 프로젝트 및 번역 등을 함께 했다.

시위, 파업, 폭동, 반란 등 민중의 선도로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회적 동원으로 특정 법안을 저지하거나 심지어 정부를 전복 시킬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기존 사회 질서를 혁신 할 수는 없다. 정치적 도구는 힘을 규합할 수 있고 항상 적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적재적소에 어떻게 파업을 할 것인지 생각한다. 또한 사회력이 반란을 혁명으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소모되거나 낭비되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 결론은 많은 지역에서 대부분 중요한 사회운동이 정당 건설을 제안하게 하거나 그것들을 정치적 도구로 간주하였다. 왜 정치적 도구인가? 많은 전통 정치적 좌파와는 달리 사회적 좌파는 그들의 정치적 도구를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생각했다. 목표는 정당 건설이 아니고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에서 도구로 정당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적 도구 개념 또한 민중에게 불신당하고 연결 고리도 단절된 기존 정당과 좌파와 우파에서 쓰는 형식과 내용 모두와 차별을 두었다.

선거를 치르는 것이 정치적 도구의 중요한 업무지만 단지 선거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를 위한 급진적 계획 뒤에 존재하는 사회적, 정치적 좌파를 규합하는 수단이 되어야만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힘의 균형을 이동 시키고, 오늘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내일은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정치적 도구는 현재 상황에 만족스럽지 않은 사회의 더 폭 넓은 부문까지 접근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정치적 도구는 정권 장악을 목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를 위해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사회력 구축 없이는 정치력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적 도구는 이전에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을 정치적으로 조직해야만 하기 때문에 기존 사회적, 정치적 좌파 일부의 단순한 모임 이상이어야 한다. 그것의 프로그램 또한 사회운동 요구를 간단하게 모아 놓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도구는 사회를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진정한 변혁 계획을 제시해야만 한다.

마르따 하네커가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적 도구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저는 이 정치적 도구를 국가 프로젝트를 세울 수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분야에 대한 나침반으로 통합하고 활동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은 다른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사회운동을 조종하지 않고 대신 자율성을 존중합니다. 공격적인 지도자가 진정한 대중의 교사로 생존을 위한 일상생활에서 획득되었거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전통에서 유래한 지식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정치 조직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식과 이 지식의 융합으로 가능합니다. 사회운동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목적 지향적이고 일관성 있는 도구입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도구는 부담이 아닌 논쟁으로 사회운동을 설득해야만 한다. 정치적 도구는 사회와 좌파에서 헤게모니를 더 넓게 장악해야한다. 안타깝게도, 정치적 좌파 일부는 일단 정치적 ㄷ구가 가장 큰 힘을 갖게 되면 더 이상 대중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삶이 자기식대로 흘러가고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도전을 동반하여 계속 생겨난다. 우리는 헤게모니 개념을 역동적인 것으로 봐야한다. 헤게모니를 한번 장악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장악한 것은 아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이겨야만 하는 과정이다.

사회력을 구축할 수 있으려면 정치적 도구는 사회운동을 존중하고 그들의 자율적 발전에 기여해야만 하고 조작하려는 모든 시도를 피해야 한다. 사회운동이 그들의 일상 투쟁을 통해 많은 교훈을 배우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해결책을 찾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회운동과 정당은 선거 승리가 권력 쟁취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수행해야 할 많은 일이 있고, 변화를 구현하는 것이 법령을 공표하는 것만큼 간단하지는 않다. 정치적 도구는 사람과 사회운동의 지지를 유지하고 그들을 동원하여 장애물을 극복하려면 참을성 있게 이러한 어려움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회운동을 정부의 부속물로 복속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적 도구는 사회운동의 자율성과 잘못을 비판 할 권리를 존중해야한다. 사회운동 또한 모든 것에 반대만 일삼는 문화를 극복해야만 한다. 우익 정권 하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반대만 했다. 정부가 만들어 발표하면 좌파는 무조건 ‘반대’를 외치고 그것을 막아내려고 항거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좌파 정권과 맞선 곳과 관련해서 하네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반대만 일삼는 문화를 극복할 수 없다면 지도자와 사회적 권력 기반사이에 분열이 생길 것입니다. 사회적 기반이 일상생활에서 정부 정책의 긍정적인 결과를 보게 되면 지도자의 반대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중 권력은 어떠한가? 사회운동과 정당은 꼭 필요하지만 어느 것도 민중을 대신 할 수 없음이 이제 명확해졌다. 필요한 것은 정치적, 사회적 좌파 모두가 협력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진정한 민중권력 기관이다.

최근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기존 국가가 이 임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참여 공간이 만들어져 그쪽으로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 공동체와 직장의 자주관리를 위한 이 공간은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고 결정된 임무 수행을 촉진하고 고무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참여를 통해서만이 민중이 성장하고, 자신감이 증강되고, 물려받은 문화의 족쇄를 벗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간과 새로운 국가는 하룻밤 만에 이룰 수 없다. 따라서 낡은 체제와 새로운 민중 권력 기구가 공존하는 과도기를 염두 해야 한다. 좌파 세력이 이전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가 생기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이중 권력”의 고전적인 개념과 유사하다고 보지만 현실 상황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과의 관계는 대립이 아닌 상호 보완적이다.

하지만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핑크타이드는 사회운동이 계승된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계승된 국가 내에 존재하는 엄청난 관성과 공직자가 과거 공직자와 똑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으로 민중 권력의 새로운 기관도 조합주의, 부패, 관료주의, 권력 지분 차지를 위한 내분 등으로 타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국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지역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주요 노동조합이 자신의 공장 너머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지역 경계를 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비록 몇몇 경우에 있어, 이것이 어떤 결정에 바로 영향을 받는 것들에 해를 끼칠 수 있다 하더라도 기존 국가는 국가적 특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지역을 넘어 세계적 관점을 취한다.

마이클 레보위츠가 언급했듯이 이를 고려했을 때 자립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좌파 세력이 낡은 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국가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가능한 민중의 많은 참여로 수행되어야 한다. 새로운 국가 기관이 이 임무에 가장 잘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