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를 이용한 트럼프의 갈취 - 기초편

정리: 송대한(콘텐츠팀,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지난 4월 2일(일명 트럼프 ‘해방의 날’),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한 트럼프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이용하여 4월 5일부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상품의 관세를 10% 올렸다. 4월 9일에는 57개국을 대상으로 추가 관세를 발표(한국은 25%로 책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로 미국 증시에서 시가 총액 10조 달러가 증발하고, 채권 시장에서 미국의 채무 부담이 증가하는 등 시장이 불안정해지자 트럼프는 관세 인상을 90일(7월 8일까지) 유예했다. 게다가 중국산 제품에 부과했던 145%의 관세도 30%로 낮추었다.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산 제품에 125%의 관세를 설정했던 중국도 10%로 관세를 인하했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친다고 보며, 미국의 일부 노동조합(전미자동차노동조합)은 이러한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 소비자와 세계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들어 이전의 글로벌 무역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진보 세력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아야 할까? 트럼프의 정책이 단순히 미국을 다시 산업화하기 위한 미국 보호주의일까? 미국 소비자에게 관세의 부담을 전가하고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신흥 경제의 부상을 저해한다면, 이러한 정책을 철폐하고 이전의 (신자유주의) 무역 체제로 돌아가자고 해야 할까?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이해하고 진보 세력이 어떻게 이에 대응해야 할지를 모색하려면 미국이 경제 세계화를 만들어낸 이유와 그 방법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안과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요구를 개념화해야 한다.

미국의 자기 부정

트럼프는 관세 인상의 근거로 세계 각국이 그들의 제품을 사들이는 미국의 관대함을 이용했기 때문에 막대한 무역 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피해자 코스프레는 미국 정부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싼 제품을 미국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 세계 공급망을 구성하고 그를 통해 이윤을 거둬들이면서 무역 적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가려 버린다. 사실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 제품의 37%는 미국 기업이 가공 목적으로 들여오는 중간재이다. 한국의 대미 수출품 중 51.2%도 중간재이다. 여기서 미국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미국 기업이 유리한 고지(디자인, 브랜딩, 지식재산)와 수익성이 매우 높은 글로벌 공급망을 점령하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부문(산업 생산)은 다른 나라로 외주하도록 세계 체제와 규범을 만든 주요 설계자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미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로 미국 달러의 강세를 든다. 그렇지만 미국이 실제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서 ‘말도 안 되는 특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가 미국처럼 어마어마한 무역 적자를 겪는다면, 통화 가치는 하락하고, 수입품의 구매력도 낮아지며, 다른 나라에 더 싼값에 상품을 수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 때문에 이러한 시장의 조정 역학이 작동하지 않는다. 강달러는 무역 적자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을 겪지 않고도 달러를 찍어내고 돈을 빌려 다른 나라로부터 싼 값에 상품과 노동력을 구매하는 특권으로도 작용한다. 또한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 덕분에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여 세수 부족에 따른 재정 적자를 메꾸고 있다. 게다가 달러는 미국에 세계 금융 체계를 감시하고 통제하여 제재까지도 가할 수 있는 막대한 지정학적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다자주의에서 일방주의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과 그 뒤에 생긴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무역 자유화로 세계에 다극화의 요소가 생겨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관세는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다. 이는 미 제국에 더 큰 이득을 가져오기 위한 관세 갈취이다. 트럼프는 미국 다국적 기업의 노다지인 자유무역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적 라이벌(예: 중국)에게 벌을 주고, 가까운 동맹국부터 시작하여 이른바 미국의 속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동맹국들을 압박하여 일부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옮기게 만드는 등의 상징적인 승리를 거두어 그의 지지 기반이자 지금의 상황에 불만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방직 산업이나 더 고차원적인 전자 산업 등 자체적으로 제조업을 대규모로 부흥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동화가 미국인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임금 수준이 상당히 높아지고 기업도 큰 이윤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러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다(나이키는 멕시코에서 생산 자동화를 시도했으나 3년 만에 포기했고, 매년 변화하는 아이폰을 위해 자동화 설비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비현실적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목표가 현재의 신자유주의적인 변동환율제를 대체하는 ‘마러라고 합의’를 만들어서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환율 통제권을 이용하여 동맹국을 압박해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를 절상하여 미국이 유리한 조건으로 수출하도록 만드는 것(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 일본처럼)이라고 주장한다. 이 체제는 라이벌 국가를 배제하고 겨냥할 것이다. 또한 미국이 속국에 대한 영향을 더욱 확대하고 라이벌 국가를 배제하거나 표적으로 삼는 다극화된 세계로의 전환을 더욱더 가속화할 것이다. 가까운 동맹국(일본, 한국 등)이 트럼프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기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 세계 무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불과하며, 트럼프의 지렛대가 세계 경제 질서를 재편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불분명하다. 일례로, 트럼프의 관세 인상에 맞서 중국도 보복 관세를 부과했으며, 결국 트럼프가 관세를 30%로 다시 낮추고, 시진핑이 그에 맞춰 10%로 관세를 낮추기로 하면서 첫 번째 관세 전쟁의 승자는 중국이 되었다.

보호무역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넘어

전 세계가 트럼프의 관세 갈취에 저항하고 이를 막아야 하지만, 그 해법이 단순히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로 회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가 자국의 다국적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서민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에 기반한 경제 성장이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낙수효과로 반드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사회 서비스와 보장 조치를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있어야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이는 사회적 동원과 더 큰 정치적, 민주적 권력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2025년 10월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 여기에 모인 정상들은 트럼프의 관세 문제의 해법과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장을 개방하고 무역을 자유화하며 투자 규제를 풀 것을 요구할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APEC 회의에서 진보 세력은 기업의 이윤이 아닌, 사람과 지구를 우선하는 세계 경제에 대한 ‘다른’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